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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장덕준 실종 사건과 일본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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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sappearance of Jang Deok-Jun in 1920 and Japan's Response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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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In this paper, we attempted to reexamine the part that remained blank based on new historical materials from Japan on the ‘disappearance of Jang Deok-Jun’. First, I clarified reporter Jang Deok-Jun's actions and coverage route in Kando. According to the Japanese report, Jang Deok-Jun went to Kando to cover the ‘Jangam Village Massacre’, passed through Yongjeong Village, and the scoop looked around the area, revealing his identity as a reporter to the military police Captain Watanabe and directly protesting could reveal the course. Second, In this paper it was revealed that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he Army of Japan were concerned about the international condemnation and negative impact that the disappearance of reporter Jang Deok-Jun would bring. And the Nanam Military Police Commander Suzuki's investigation report, and the responsibility for the disappearance (or murder) of reporter Jang Deok-Jun was “a person who was not or By imputing it to “the evil group”, he emphasized that it has nothing to do with the Japanese side. Lastly, in this paper, the time of Jang Deok-jun's murder was estimated from late November to early-mid December, and the murder area was assumed to be Gukjaga-Hunchun.

한국어

본고에서는 그동안 본격적 연구가 미진했던 ‘장덕준 실종 사건’에 대해 일본측 新사료를 토대로 공백으로 남아있는 부분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했고, 사건 보고서 에 나타난 일본측의 입장과 시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를 통해 기존 논의에 추 가적으로 덧붙인 논증은 무엇인가? 첫째, 간도에서 장덕준 기자의 행보와 취재 루트를 보다 명확히 했다. 기존 논의 에서는 장덕준의 마지막 행보 및 이동 경로가 소문에 의거한 조사였으므로 불투명 하거나 추론 위주였다. 그러나 일본측 수색 결과 보고서를 통해, 장덕준은 ‘장암촌 학살’에 대한 취재를 위해 간도로 갔으며, 용정촌을 거쳐 국자가 인근까지 둘러보 며, 헌병 와타나베 대위에게 기자 신분을 밝히며 직접 항의하는 장덕준의 구체적 행보를 밝힐 수 있었다. 둘째, 장덕준 실종 수색 보고서의 행간을 통해 일본측(외무성, 육군성)이 무엇을 우려했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 장덕준은 기자이면서 선교사들과도 친분이 있는 기 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언론계와 해외선교계로도 파급효과가 확산될 우려가 농후했 다. 즉, 기독교인 기자 장덕준 한 사람의 실종이 불러올 오해(학살에 대한 ‘꼬리 표’), 국제적 시선, 나아가 영일동맹 갱신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파급 효과까지를 우려했던 것이다. 이렇듯 부담이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장덕준 행방불 명에 대한 일본측(외무성 및 육군성)의 공식적 답변은 나남헌병대장 스즈키의 조 사보고서의 결과 및 추론을 토대로 장덕준 기자의 실종(혹은 살해) 책임을 “불령선 인 혹은 불령한 무리”에게로 전가시킴으로써 일본측과는 무관함을 강조했다. 끝으로 장덕준 기자의 명확한 사망 시점과 살해 지점에 대해 기존연구에서는 출발지 회령에 가까운 북흥촌을 제시했지만, 본고에서는 위치적으로는 간도참변의 피해가 극심했던 국자가∼혼춘 일대에서, 또 시기적으로는 그 일대 ‘토벌’이 극성을 부리던 11월 하순에서 12월 초중순 시점에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 제시했다.

목차

1. 머리말
2. 기존 기사 논점 정리 및 新사료 구성 소개
3. 외무성 논의
4. 육군성 조사
5. 맺음말
참고문헌
要旨
ABSTRACT

저자정보

  • 김연옥 KIM Yeonok.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부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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