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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港場釜山における感染病とその対処 : 一九〇七年コレラ流行の事例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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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에 있어서 감염병과 그 대책 : 1907년 콜레라 유행의 사례

심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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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본어

本稿では、一九〇七年に朝鮮で流行したコレラの被害状況と防疫 活動を把握した。そして、開港期の釜山における日本人居留地で展 開された防疫政策、その中でもコレラをはじめとした伝染病対策 の一環として実施された上水道施設の整備に視点を置きながら検討 した。 まず、一九〇七年のコレラ被害は規模としては小さいものであったと思われる。それにもかからわらず、大規模な防疫事業が 行なわれたのは、なによりも「皇太子殿下ヲ安全ニ奉迎シ得ルコ トヲ期スへシ」という日本側の意向によるものだったと思われ る。当時の防疫は、日本との関係に配慮する政治的な側面が強調さ れ、それが契機になり、一般民衆にも目を向けるようになったと いうことが指摘できる。 また、朝鮮人は井戸を使用する際、低給水をそのまま使用するな どの非衛生的な状況に置かれていたため、水質の影響に左右されや すいコレラへの感染リスクにさらされていたと言える。その対処 として行った上水道工事は、第一・二期はもちろん、第三期工事も 徹底して日本人居住地域を中心に計画かつ施行されていたことが確 認できる。したがって、このようなコレラ防疫への取組は、在釜 朝鮮人には影響を与えなかったと考えられる。当時コレラや伝染 病の流行を防ぐために実施された釜山の上水道工事は、在釜日本人 のための行政であり、在釜朝鮮人はコレラと伝染病に対する衛生政 策からは周縁化されていた。むしろ、上水道工事は釜山府の在釜日 本人を中心とした都市化過程の一端を担っていたといえる。つま り、釜山の地域住民はコレラをめぐる衛生状況において他者化され ていた。 在釜日本人である居留民の活動の背景には、国家性があったこと を否定できないと考えられる。日本人居留地は、国家間で締結され た条約の規定に基づいて設置された空間であったため、活動の主 体である居留民の動きは、日本政府の朝鮮経営を基盤にしていたと 判断される。

한국어

본고는 1907년 조선에서 유행한 콜레라의 피해 상황과 방역 활동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개항기 부산에 있어서 일본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전개된 방역대책, 그중에서도 콜레라를 시작으로 전염병의 대책의 일 환으로 실시된 상수도 설치의 정비에 시야를 두고 검토했다. 우선, 1907년의 콜레라 피해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방역이 실시된 이유는 일본 황태자의 조선으로 방 문이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방역은 일본과 관계된 정치 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일반 민중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인은 우물을 사용할 때, 저급수를 그대로 사용하는 등의 비위생적인 상황에 놓여있었다. 수질의 영향을 크게 받는 콜레라 의 감염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 특히 부산에서는 그 대책으로 실시된 상수도 공사는, 제1기・제2기는 물론 제 3기 공사에 있어서도 철저하 게 일본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계획되어 실시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 다. 당시의 콜레라와 전염병의 유행을 막기 위해 실시된 부산의 상수도 공사는 재부 일본인을 위한 행정이었으며 재부 조선인은 콜레라와 전 염병에 대한 위생정책에서 타자화되었으며, 오히려 상수도 공사는 부 산부의 재부 일본인을 중심으로 한 도시화 과정의 일환이었다는 것을확인할 수 있었다. 재부 일본인의 활동에는 국가성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인 거류지는 국가 간의 체결된 조약의 규정을 기반으로 설치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활동의 주체인 거류민의 활동은, 일본 정부의 조선 개입이 기반 되었다고 판단한다.

목차

抄録
Ⅰ. はじめに
Ⅱ. おわりに
参考文献
국문초록

저자정보

  • 심민섭 一橋大学大学院社会学研究科・歴史専攻博士後期課程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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