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Wartime Japan's Film Policy in China and the ‘Great East Asian Cinema’
초록
영어
This article attempts to re-evaluate China United Productions Ltd(中華電映), which was established in Shanghai in June 1939. Japanese researchers previously suggested that Nagamasa Kawakita, who led the organization, was a person that resisted the demands of the Japanese military and tried to defend and protect Chinese filmmakers. This paper focuses on his salient activities and tries to break away from the existing research framework that was limited to the relationship between Japan and China. During the war, Japan made films with China and other countries. If a comprehensive review of the film policy direction in various regions, including China, is made, it could shed some light on whether Nagamasa Kawakita's activities and remarks were consistent with the policy directions for Japanese films at the time. To this end, this paper looks at the direction of film production in Japan, focusing on the concept used at the time, ‘Great East Asian Cinema (大東亜映画)’. It is found that the film production environment and the narrative of the cinema also changed due to the need for regional cooperation. Based on these findings, it can be evaluated that Nagamasa Kawakita was just one of the executives of Imperial Japan's film policy. And I suggest that future research on this period should move beyond the evaluation of the individual Nagamasa Kawakita and shift to analyzing the production environment and narratives of films in each region on its own.
한국어
이 글은 1939년 6월 상하이에 출범한 일본의 대중국 영화정책 기관인 중화전영에 대한 재 평가를 시도하였다. 기존의 일본학계는 중화전영을 이끈 가와키타 나가마사라는 인물에 대해 서 군의 요구에 저항하는 인물이었고, 중국 영화인을 옹호하고 보호하려 했다고 평가해왔다. 이 논문은 가와키타라는 한 개인의 돌출된 행위에 초점을 맞춰왔고, 일본과 중국이라는 양국 간의 관계에 한정되어 왔던 기존의 연구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일본은 전쟁을 확산하면 서 중국을 비롯하여 여러 국가와 영화를 만들게 된다. 중국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 있어서의 영화정책에 대한 포괄적인 방향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진다면, 가와키타 나가마사의 활동과 발언, 그리고 중화전영의 제작방향 등이 당시 일본의 영화에 대한 정책방향과 같았는지, 달랐 는지 비교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본고는 일본 전체의 영화제작 방향성을 ‘대동아영화(大東 亜映画)’라는 당시 사용된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고, 이러한 방향성을 가와키타의 행로와 견주어보는 식으로 논의를 전개해 나갔다. 본고는 ‘대륙영화’라 불린 협력을 요구하는 일방적 메시지가 담긴 영화제작에서, ‘대동아공영권’ 이념을 바탕으로 중국인에 대한 이해와 중국인 의 참여, 그리고 중국과의 갈등이 아닌 서구 세력을 적으로 하는 협력의 필요성으로 영화제 작 환경과 영화의 내러티브도 변해갔음을 찾아내었다. 이러한 발견을 토대로 볼 때 가와키타 나가마사라는 개인의 존재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제국일본의 영화 정책의 일개 집행자였다고 평가될 수 있다. 앞으로의 이 시기에 대한 연구는 가와키타 나가 마사라는 개인에 대한 평가를 벗어나서, 각 지역의 영화들의 제작환경과 내러티브를 총체적 을 분석해나가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한다고 생각된다.
목차
1. 들어가며
2. ‘중국인을 위한’ 영화제작자 가와키타 나가마사
3. 가와키타 나가마사에서 벗어나기
4. 대륙영화에서 대동아영화로
5. 중화전영이 배급하고 만든 영화들
6. 나가며
<참고문헌>
<국문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