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연구논문

천주교 ‘박해시기’ 순교자 시신의 수습, 안장, 이장에 관한 자료 연구

원문정보

Study on the materials of recovery, burial and reburial of martyrs' bodies during the period of Catholic persecution

이석원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aimed to identify how the bodies of martyrs during the period of Catholic persecution were recovered, buried, and reburied by compiling relevant materials. This study identified 275 martyrs (231 buried, 44 not buried) whose recovery of bodies and burial have been confirmed based on the materials on the martyred Catholics from 1791 to 1879. Records kept by the Joseon government did not display much information about the bodies and graves of the Catholics. Catholic records of the martyrs’ bodies were found in the reports written by missionaries or Catholics, short biographies of martyrs, and the beatification trial records. Among them, the beatification trial records were the most detailed and reliable, as the questions asked in the trials raised issues such as the recovery and burial of the martyrs' bodies and their miracle stories. The records shared several common characteristics. First, there were relatively more records on missionaries. Second, while there were many testimonies on the martyrs' bodies and the miracles that appeared on their graves, not much information could be found on the recovery and burial of the bodies. This paper classified the 275 martyrs whose recovery of bodies and burial were confirmed by period and region using charts and identified their characteristics. The body recovery and burial rate were higher when the Catholics made an organized effort out of their own initiative, as in the persecutions in 1839 and 1846. On the other hand, as shown in the persecutions in 1801 and 1866, the bodies were rarely recovered or buried when the persecution against Catholicism was so severe that the Catholics could not make any effort. The rate of recovery and burial of martyrs by region did not coincide with the number of martyrs by region. While many martyrs were found in the Gyeonggi region, where persecution was severe since 1866, the rate of recovery and burial of bodies was low. In the Chungcheong region, most recoveries and burials of martyrs took place from 1866 to 1867 as the persecution became even more severe in 1868. The martyrs whose bodies were recovered and buried in the Jeolla and Gyeongsang regions, where persecution was relatively less severe in 1866, were mostly martyred before 1839. Since it was an era of persecution, most of the martyrs' graves remained unmoved, aside from the graves of Western missionaries and Father Kim Taegon.

한국어

이 논문은 천주교 ‘박해시기’ 순교자 시신의 수습, 안장, 이장 관련 자 료들을 종합하고 정리하여 그 특성을 밝히려는데 목적이 있다. 1791년(신 해) 이후 1879년(기묘)까지 순교한 신자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통해 시신 의 수습·안장 여부가 확인된 순교자는 275명[안장 231명, 안장 못함 44 명]이다. 조선 정부의 기록에는 신자들의 시신이나 무덤에 대해서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순교자 시신에 관한 천주교 측의 기록은 선교사제나 신자 들의 서한[보고서], 순교자의 행적[약전], 시복 수속을 위한 증인 재판[시복 재판록]에 나오는데, 시복재판록 기록이 가장 상세하고 신빙성이 높다. 재 판 조목 중에 시신의 수습과 안장, 이장, 관련된 영적(靈蹟) 사실을 묻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순교자 시신의 수습·안장 관련 자료에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첫째는 상대적으로 선교사제에 대한 기록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둘째는 시신이나 무덤에 나타나는 영적에 대한 증언이 많은 반면 수습·안장 과정에 대한 구 체적인 사실이 명확하게 기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신 수습과 안장 여부가 확인된 순교자 275명을 시기별 지역별로 분 류해 도표로 제시하고, 그 특성을 살펴보았다. 1839년과 1846년 박해 때 처럼 신자들이 순교자의 시신을 수습하려는 의식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나 섰을 경우 수습·안장 비율이 높았다. 반면, 1801년과 1866년 박해 때처 럼 천주교 박해가 혹독하여 신자들이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는 수습·안장 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순교자 시신의 수습·안장 수치를 지역별로 비 교하면 순교자의 지역별 수치와는 비례하지 않는다. 1866년 이후 박해가 혹독했던 경기 지역은 순교자가 많이 배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신의 수 습·안장 비율은 낮았다. 충청 지역은 1868년 박해가 격화되면서 순교자 시신·안장은 1866~67년에 주로 이루어졌다. 1866년 박해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전라와 경상 지역에서 수습·안장된 시신은 대부분 1839년 이전에 순교한 경우이다. ‘박해시기’라는 특성 때문에 안장된 순교자의 시신이 이 장되는 경우는 서양 선교사제와 김대건 신부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관련 자료 소개와 그 성격
Ⅲ. 수습, 안장[이장]의 시기별 지역별 특성
Ⅳ. 맺음말
[부록]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이석원 Lee, Seok-won. 수원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 12,100원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