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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t-wing Origins of the ‘Nuclear Power State’ and the Emergence of the ‘the only country ravaged by the atomic bombs’ Discour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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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국가’의 좌익적 기원과 ‘유일피폭국’ 담론의 등장

Seo, D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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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In this article, analyzed in the context of the global Cold War was the logic and aspects of transformations on what perceptions of atomic energy (nuclear energy) the left-wing in post-war Japan had during the formation of an atomic power state. For example, the Japanese Communist Party clearly maintained the position of pro-Soviet Union after 1948 in the competi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on the nuclear development. But the Party adopted the ‘peaceful use of atomic energy’ as the official view of the Party in 1954, and as a result, made a political choice to cooperate in forming a ‘nuclear power state’ system. A physicist named Mitsuo Taketani cannot be left out when talking about the perception of nuclear power by the Japanese left after the war. This is because he was a scientist who had an absolute influence on the Japanese Communist Party's perception of nuclear power and a prominent commentator on the peaceful use of nuclear power. However, after the “Daigo Fukuryumaru” bombing incident in 1954, Taketani’s views gradually moved away from the Communist Party. That did not mean that he withdrew his support for the use of nuclear power in peace. Rather, they argued that nuclear power can be safely used in Japan because Japan is the “only atomic bomb”. Afterwards, as ‘the only country exposed to radiation = Japan' was established as a self-representation representing Japan after the war, the dynamics of the Cold War surrounding nuclear energy were post-hardened, and the ‘safety myth’ that Japanese people who had experience of exposure to nuclear power could control the risks of nuclear energy was born And this ‘safety myth’ formed the social and psychological foundation that supported the ‘nuclear power state’.

한국어

이 논문은 미소 간 체제경쟁의 영향 속에서 주목받았던 원자력이 전후일본에서는 그런 국제정치적 맥락과 분리되어, 부흥을 약속하는 ‘꿈의 에너지’로 수용되었던 역사적 과정의 기술을 목적으로 한다. 패전 직후 공산당과 좌익 지식인들은 미국의 원자폭탄을 유력한 전 쟁 억제의 수단이자 번영과 풍요를 약속하는 동력원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원자력을 둘러싼 미소의 경쟁이 격화되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사회주의에서만 가능하다며 입장을 변경 했고, 1950년대 중반 미국의 후원 속에서 일본정부와 과학계 그리고 미디어의 ‘합작’으로 원자력 발전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자, 원자력의 평화이용을 당의 공식방침으로 채택함으로써 전후 ‘원전국가’ 형성에 합류한다. 전후 일본좌익의 원자력 인식을 말할 때 다케타니 미쓰오라는 물리학자를 빼놓을 수 없 다. 그는 일본공산당의 원자력 인식에 영향을 미친 과학자이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 한 저명한 해설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54년에 발생한 ‘다이고후쿠류마루’ 피폭 사건 이 후로 다케타니의 견해는 공산당과 점차 멀어졌다.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원자력의 평화이용 을 지지했지만, 그는 방사능 피폭의 위험성을 거론하며 원자력 개발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 다. 그렇다고 그가 원자력평화이용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은 ‘유 일피폭국’이기 때문에 일본에서야말로 원자력은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했다. 이후 ‘유일피폭국=일본’은 전후일본의 유력한 자기표상으로 정착되면서 원자력을 둘러싼 냉전의 역학은 후경화되었고, 피폭의 체험을 가진 일본인은 원자력의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안 전신화’가 ‘원전국가’를 지탱하는 사회심리적 기반을 형성했다.

목차


1. Introduction
2. Left-wing's Perception of Atomic Energy during the Occupation Period –‘Peaceful Use of Atomic Bomb’ to ‘Atoms for Peace’
3. Combination of ‘Marxist’ science and the use of atomic energy for peace
4. Emergence of ‘the only country ravaged by atomic bombs’ discourse and introverted atomic energy discourse
5. Conclusion
참고문헌(Reference)
<요지>

저자정보

  • Seo, Dong-ju 서동주. Assistant Professor, Institute of Japan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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