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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실용 부채와 선장(扇匠)의 직역 변화 및 제작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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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cal Changes of the Production of Royal Fan and of the Fan Craftsmen in Joseon Dynasty

장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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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fan was a local specialty representing Joseon.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fans were given as gifts to Chinese envoys, Joseon envoys took them as gifts whenever they went to China, or the king gave them as Dano gifts. In order to supply this, the artisan system was reorganized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craftsmen of the central government office were the original captain and the concubine captain, and the Seonjajang made fans in Jeolla-do and Gyeongsang-do in the region. However, two wars destroyed the system. Accordingly, in the late Joseon Dynasty, a temporary organization (dogam) was installed to hold royal rituals, and craftsmen were mobilized to produce fans. Their social situation and role changed with the times. In the 17th century, it was produced by craftsmen living in Seoul, or it was a special product of Jeolla-do or Gyeongsang-do, and it was a debt to the king. In the 18th century, royal fans were exclusive to the government office and were drafted into the book for more than 10 years to produce fans. It caused social controversy by forcing the heads of Jeolla-do and Gyeongsang-do to collect debts. From the end of the 18th century to the 19th century, the craftsmen who made royal fans with the development of the commodity economy were those who produced private products. At that time, the fans for calligraphy and painting by scholars also increased, and it was made into a product and changed to a method of selling it in the market.

한국어

부채는 조선을 대표하는 특산품이었다. 조선시대 내내 부채는 중국의 칙 사들에게 선물로 주거나 중국에 사행을 가는 사신들이 예단으로 가져가거 나 국왕이 신하들에게 단오 선물로 하사하는 공예품이었다. 이것을 수급하 기 위해 조선은 장인제도를 정비하여 공조에는 경공장인 원선장과 첩선장 을, 전라도와 경상도에는 외공장인 선자장을 두어 부채를 생산하였다. 그러 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이러한 장인제도가 무너져 국가적 수 요에 필요한 부채를 생산할 대책 마련이 요구되었다. 이에 왕실 의례를 치 르고자 설치한 도감에서는 장인을 징발하여 부채를 제작하였다. 그들의 사 회적 처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다. 17세기에는 서울에 사는 장인들 이 왕실용 부채를 제작했고, 전라도나 경상도의 특산물로 국왕에게 부채를 진상하였다. 18세기 왕실용 부채는 관청에 전속되어 10년 이상 활동하던 장 인들이 도감에 동원되어 부채를 제작하였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수령들은 부채를 강제로 징수하도록 하였다. 18세기 말 이후 19세기에 경제적인 변화 에 따라 복정제를 폐지하고 대신 국가용 부채는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매 조달하였다. 왕실용 부채를 제작하는 장인 또한 사적 생산에 종사하는 장인이 생산하였다.

목차

【논문 요약】
Ⅰ. 서론
Ⅱ. 조선 전기 부채의 국가적 수급
Ⅲ. 17세기 경공장(京工匠)의 부채 제작
IV. 18세기 관장(官匠)의 부채 제작
V. 19세기 사장(私匠)의 부채 제작 실태
VI.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장경희 Jang, Kyung-Hee. 한서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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