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During the Joseon Dynasty, Gochwi is divided into the front and the rear Gochwi(前部ㆍ後 部鼓吹), behind the hall Gochwi(殿後鼓吹), hall garden Gochwi(殿庭鼓吹). The name “small scale honor guard Gochwi(細仗鼓吹)” appears in many of the Sillok(實錄,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this is the Gochwi that led to the front of important royal items. small scale emble Gochwi can be seen as a kind of the front Gochwi in that it guides an article forward. However, the band belongs to the honor guard(儀仗) or the Nobu(鹵簿, the name of the royal procession), and the essential purpose of the honor guard or the Nobu is to have the formalities of the target. small scale honor guard Gochwi must be distinguished from the front Gochwi. In order to understand small scale honor guard(細仗) and small scale honor Gochwi(細仗鼓 吹), this study examined prior research and historical records on small scale honor guard and small scale honor guard Gochwi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small scale honor guard were stipulated in 「Orye(五禮)」 and Gukjooryeuiseorye(國朝五禮儀序例). The use of the small scale honor guard is checked in the Sillok, 「Orye(五禮)」, Gukjooryeui(國朝五禮儀), Gukjosokoryeui(國朝續五禮儀) and Daehanyejeon(大韓禮典). Although the honor guard’s space is limited to the palace, small scale honor guard was accepted inside and outside the palace even though it was a type of honor guard. Most of the small scale honor guard in the Sillok were accompanied by Gochwi. Consequently, it was confirmed that small scale honor guard and Gochwi had an inseparable relationship. The organization of small scale honor guard Gochwi appeared for the first time in the Nobusik(鹵簿式), and the type of musical instrument was the same as the front Gochwi, but it was much smaller. As a result of checking the Uigwe(儀軌, royal protocol) Banchado(班次圖, paintings record national events) of the late Joseon Dynasty, its composition and scale were not standardized like small scale honor guard. Small scale honor guard and small scale honor guard Gochwi that led to the front of important royal items from the Joseon Dynasty to the Korean Empire, and were operated according to the situation.
한국어
기존의 고취 관련 연구에서 조선시대 고취는 전부고취ㆍ후부고취, 전정고취, 전후고취로 구분되었는데, 실록 기사에서는 ‘세장고취(細仗鼓吹)’라는 고취 관련 명칭이 적지 않은 비중으로 나타난다. ‘세장고취’는 의장의 종류인 ‘세장’과 악대의 종류인 ‘고취’의 합성어이므로, 이를 악대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세장’과 ‘세장에 수반된 고취(세장ㆍ고취)’로 분리 지칭하여야 한다. 세장ㆍ고취는 인물의 이동이 아닌 왕실의 중요 물품이 실린 채여 또는 용정 등을 전도(前導)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고취악대이다. 세장ㆍ고취는 물품을 ‘전도’한다는 점에서 전부고취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므로, 대부분의 선행연구에서 세장ㆍ고취를 전부고취의 일종 또는 단순 축소형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이동하는 대상에 수반되는 악대 는 의장 또는 노부에 부속되고, 의장과 노부의 본질적 목적이 대상에 따른 격식을 갖추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세장ㆍ고취는 성격상 전부고취와 구별되어야 한다. 세장과 세장ㆍ고취의 활용은 실록과 전례서 및 의궤에 나타난다. 세종실록 「오례」와 국조오례의서 례에서는 의장의 공간적 배경을 궐내인 전정으로 한정하였는데, 세장은 의장의 종류임에도 ‘왕실의 중요 물품 인도’라는 1차적 목적에 의해 궐 내외에 통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실록에 기록된 세장은 대부 분 고취를 수반하여, 양자가 불가분의 관계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장ㆍ고취의 편성은 노부식(1762) 에 처음 나타나는데, 악기 종류는 전부고취와 동일하였으나 인원은 절반 이하였다. 조선 후기 의궤 반차도 를 확인한 결과, 세장ㆍ고취는 세장과 마찬가지로 그 구성 및 규모가 정형화되지 않고 유동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장과 세장ㆍ고취는 조선 전후기를 거쳐 대한제국기까지 의례에서 왕실의 중요 물품을 인도하였고, 상황에 따라 수효 및 연주 여부 등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존속하였다.
목차
Ⅰ. 서론
Ⅱ. 세장(細仗)과 고취(鼓吹)
Ⅲ. 조선 후기 細仗ㆍ鼓吹의 활용 양상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저자정보
참고문헌
- 1「國朝五禮儀」
- 2「國朝五禮儀序例」
- 3「國朝續五禮儀」
- 4「鹵簿式」
- 5「大韓禮典」
- 6「朝鮮王朝實錄」
- 7강제훈, 「조선전기 국왕 儀仗制度의 정비와 상징」, 「사총」 제77집,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2012, 33~74쪽.
- 8김경록, 「朝鮮時代 外交文書 咨文의 行移體系와 변화과정」, 「고문서연구」 제46집, 한국고문서학회, 2015, 2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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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제송희, 「조선시대 儀禮 班次圖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