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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오대산 상원사 거둥과 만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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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Sejo's trip to the Sangwonsa Temple in Mt. Odae and Mangwabong

朴道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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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King Sejo's relationship with Sangwonsa Temple was largely due to the fact that Sangwonsa Temple was located on a famous mountain. In April 1464(10th year of King Sejo's reign), when King Sejo's illness continued for 10 days, Queen Jeonghee(貞熹王后) dispatched an euuch to invite Sinmi(信眉) and his disciple Hakyeol(學悅), who were staying at Bokcheonsa Temple in Mt.Songni, to discuss the creation of the memorial temple(願刹) for King Sejo. At this time, at Sinmi's request, it was decided to reconstruct Sangwonsa Temple. Sangwonsa Temple started construction in March 1465(11th year of King Sejo's reign) and was completed the following year. King Sejo attended the inauguration ceremony of Sangwonsa Temple along with Queen Jeonghee, crown prince(世子), royal relative(宗親), and Ministers(大臣). After the inauguration ceremony, King Sejo returned to the Temporary Palace(行宮) and had Sin Suk-ju (신숙주), Han Gye-hee(한계희), and Noh Sa-sin(노사신) go to the examination site and observed the Odaesan-byeolsi(五臺山別試, the Special Examination at Mt. Odae). According to local legend, 10,000 people gathered at Odaesan-byeolsi to take the examination, so the place was called Mangwa-bong(萬科峰). In Odaesan-byeolsi, 18 people including Jinji(陳祉) were selected in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文科), and 37 people including Lee Gil-sun(李吉善) were selected in the military service examination(武科). Odaesan-byeolsi was to rectify and encourage the people of this region. This fact can be confirmed through the exam questions at the time contained in the annals of King Sejo(世祖實錄). As for the exam questions of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when I came to Gangwon Province, the land was wide but the population was sparse. It was about how to become wealthy and increase the population, and how to accumulate munitions. Examination questions are limited to Gangwon Province, and at the same time, consideration is given to allowing talented people from Gangwon Province to solve problems in Gangwon Province. Therefore, the Byeolsi at this time is understood to be made in consideration and comfort of the nobilities of Gangwon Province, which is difficult to advance to Hanyang. King Sejo passed through Mt. Geumgang in Goseong for over a month from March 16 in 1466(12th year of King Sejo's reign) to the next month 24, to attend the inauguration ceremony of Sangwonsa Temple and return to his palace. Although he stayed in Mt. Odae for only two nights and three days, he left many legends and traces here. The representative traces left by King Sejo are Seongo-pyeong where the temporary palace was built, and Mangwa-bong located on the hill to the east. King Sejo's trip to Sangwonsa Temple raised the status and position of Mt. Odae, and enabled Mt. Odae to become a history museum. However, the Big Mangwa-bong and the Small Mangwa-bong are now privately owned, so the Big Mangwa-bong disappeared into history a few years ago due to development, and only the Small Mangwa-bong remains. This is also destined to disappear when.

한국어

세조가 상원사와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은 상원사가 명산에 위치한 지덕(地 德)이 좋은 명찰로 이름나 있었던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1464년(세조 10) 4월에 세조가 병환이 10일 동안 계속되자 정희왕후는 내관을 파견해 속리산 복천사에 주석하고 있던 신미(信眉)와 그의 제자 학열을 청해와서 세조의 원찰(願刹) 조성을 의논했다. 이때 신미의 요청에 의해서 상원사의 중창이 결정되기에 이른다. 상원사는 1465년(세조 11) 3월에 착공하여 이듬해에 완 공되었다. 세조는 정희왕후와 세자, 종친, 대신들과 함께 상원사 낙성식에 참석하였 다. 낙성식을 마친 세조는 이날 행궁으로 돌아와 신숙주·한계희주·노사신 등에게 문과 시험장에 나아가서 오대산별시에 참관하게 하였다. 지역에 전하 는 말에 의하면, 이때 오대산별시에 1만 명이 모여서 시험을 치렀다고 해서 그 과거장을 ‘만과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대산별시에서는 문과에 진지(陳祉) 등 18인을 선발하였고, 무과에 이길선(李吉善) 등 37인을 선발하 였다. 오대산별시는 이 지역의 민심을 수습하고 북돋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세조실록』에 실려 있는 당시의 시제(試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과거의 시제는 강원도에 와 보니 땅은 넓은 데 인구는 드물다. 어떻게 해야 부유하고 인구가 늘어나게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군수(軍需)를 넉넉히 쌓을 수 있을까였다. 시제를 보면 강원도에 국한된 것인 동시에 강원도 출신의 인재 들로 하여금 강원도의 문제를 풀게 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때의 별시는 한양으로 진출하기 어려운 강원도 양반들에 대한 배려와 위무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세조는 1466년(세조 12) 3월 16일부터 다음 달 윤3월 24일까지 한 달 넘게 고성 금강산을 거쳐 상원사 낙성식에 참석하고 환궁하였다. 그가 오대산에 머문 기간은 윤3월 16일부터 18일까지 2박 3일에 불과하였지만, 그는 이곳에 많은 설화와 자취를 남겼다. 그가 남긴 자취는 행궁이 차려진 성오평과 그 동쪽 언덕에 위치한 만과봉이 대표적이다. 세조의 상원사 거둥은 오대산의 위상과 지위를 높였고, 오대산이 역사박물관이 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큰 만과봉과 작은 만과봉은 현재 개인 소유의 사유지인지라 큰 만과봉은 개발로 인해 몇 해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작은 만과봉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또한 언제 사라질지 모를 운명에 처해 있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Ⅱ. 세조의 왕위찬탈과 단종의 숙청
Ⅲ. 상원사 중창과 세조의 오대산 거둥
Ⅳ. 오대산 만과봉에서의 외방별시 설행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朴道植 박도식. 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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