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Sinheung porcelain factory produced white porcelain and black porcelain at the same time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is tradition has been maintained to this day. Such a pottery tradition is difficult to find, not just in the Gangwon-do Province but also nationwide. The factory’s record of ceramic production was compiled in 1916 in Samchukunji, Sinheung-ri also produced a lot of porcelain. Through this, it can be seen that fraudulent production was already prevalent in the Sinheung porcelain factory before 1916. The characteristics of the Sinheung factory’s ceramic production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it produced white porcelain and black porcelain at the same time. This is usually difficult due to the different materials involved, such as soil and glaze. Generally, one kiln produces a field of pottery. The Sinheung factory overcame this and produced ceramics in two fields. Second, ceramics were produced by classifying grades. The best-made bowl was called “Won-gi,” the commonly used bowl was “Sang-gi,” and the bowl made of lower-grade ceramics was “Ha-gi.” All three classes of products were completed with pottery after being baked in a kiln. When the kiln cooled, the objects were taken out and the defective ones were eliminated. These may have included bowls whose glaze had not melted well or broken due to the excessive temperature in the kiln. This selection process was called “Pagi” and the rejects were destroyed in a dedicated place called “Pagi-Jang.” This is considered to be a characteristic of the Sinheung porcelain factory, which is difficult to find in other regions. Third, when making black porcelain, locally produced red ochre was used as the raw material for the glaze. This production process has been followed from the Goryeo and Joseon periods until the present moment; however, its importance has not been sufficiently recognized and studied by researchers. Therefore, this study summarizes the context of black porcelain production at the Sinheung porcelain factory by revealing the conditions under which red ochre, a raw material used for manufacturing the glaze, which has not been known. In other words, the factory was able to produce the two types of porcelain based on the regional specificity and environment, which facilitated the supply and demand of raw materials necessary for ceramic production such as clay and red ochre. The continuation of this porcelain production tradition has been made possible by family inheritance and commitment to its original quality standards. The Sinheung porcelain factory was started by Kwak Bong-jae (unknown date of birth and death)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was bequeathed to his son Kwak In-ok (1877-1964), who then passed it on to his eldest and second sons, Kwak Yong-up (1911-1992) and Kwak Yong-woon (1914-2008). At the third generation, however, the tradition of pottery production suffered as plastic and nickel-silver bowls became popular. As a result, Kwak Yong-woon was not succeeded by his son in the factory’s administration, which was transferred to one of his collaborators, Shin Won-soo, so that the tradition could continue. Shin Won-soo had the necessary abilities to produce ceramics and committed to preserve the original production techniques, tools, and raw material collection procedures at the Sinheung porcelain factory. The ceramic production tradition of the Sinheung Porcelain factory was inherited by direct descendants from the 1st to 3rd generations, and was passed on to other people with the ability to produce ceramics from the 3rd to 4th generations.
한국어
신흥사기점은 조선 후기에 백자와 흑자를 동시에 생산하였으며, 그 전통은 현재 까지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이와 같은 도자의 전통은 강원도에서 찾기 어렵고 전 국적으로도 찾기 쉽지 않다. 또한 신흥사기점에서는 백자와 흑자를 생산함에 있어 등급을 구분하여 제작하였는데 그러한 생산 체계를 갖춘 사례는 다른 지역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신흥사기점의 도자기 생산 관련 기록으로는 1916년 편찬된 삼척군지에 “신흥리에는 사기(沙器)도 많이 생산되었다.”라는 내용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신흥 지역에 위치한 신흥사기점에서는 1916년 이전부터 이미 사기제작이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흥사기점의 도자기 생산에 관한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신흥사기점은 백자와 흑자를 동시에 생산하였다. 백자와 흑자는 흙ㆍ유약 등 재료가 서로 달라 제작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 일반적으로 한 가마에서 한 분야의 도자기를 생산하지만 신흥사기점에서는 이를 극복하고 두 분야의 도자기를 생산하였다. 둘째, 도자기는 등급을 구분하여 생산하였다. 가장 완성도 높게 잘 만든 그릇은 ‘원기(元器)’,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그릇은 ‘상기(常器)’, 그리고 하급 도자기로 막 만든 그릇은 ‘하기(下器)’라 하였다. 즉 신흥사기점의 도자기 생산은 제작단계에서 부터 3등급으로 구분하여 만든 것이다. 이 3등급으로 제작된 기물들은 가마에서 굽는 과정을 거치면 도자기로 완성이 된다. 이후 가마가 식으면 기물들을 꺼내어 최종적으로 선별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때 가마의 굽는 과정 중에서 유약이 잘 녹지 않았거나 가마의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 불량품으로 판정이 되는 그릇들은 부수게 된다. 잘 못 굽힌 그릇과 부순 그릇들을 모두 합하여 ‘파기(破器)’라 하며 그 파기는 일정한 장소에 버린다. 이때 파기가 쌓여진 그 장소를 ’파기장(破器場)‘이라 한다. 따라서 신흥사기점에서 생산된 도자기는 제작 단계에서 이미 3등급으로 구분하 여 만들었으며, 가마에서 굽고 나면 한 단계가 추가되어 원기ㆍ상기ㆍ하기ㆍ파기의 4등급으로 구분되었다. 이는 다른 지역의 사례에서 찾기 어려운 신흥사기점만 의 특징으로 여겨진다. 셋째, 흑자를 만들 때 유약의 원료는 지역에서 산출되는 석간주를 사용하였다. 흑자의 생산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생산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 고 있지만 그 중요성이 인식되지 못하였으며 관련 연구 성과도 적다. 이에 본 연구 에서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흑자 생산을 위한 유약의 원료인 석간주가 형성되 는 조건과 구체적으로 산출(産出)되는 장소를 밝혀 신흥사기점에서 흑자를 생산할 수 있었던 배경을 정리하였다. 즉, 신흥사기점은 태토․석간주 등 도자기 생산에 필요한 원료의 수급이 용이하였던 지역적 특수성과 환경이 토대가 되어 백자와 흑 자를 생산할 수 있었다. 넷째, 도자기 생산주체로 종사한 장인의 계보가 뚜렷하다. 신흥사기점은 조선후 기 곽봉재(郭鳳再, 생몰연대 미상)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그 후 아들 곽인옥(郭仁 玉, 1877~1964)에게 계승되어 2대가 되었다. 곽인옥에 의한 도자기 생산 전통은 다시 그의 장남인 곽용업(郭龍業, 1911~1992)과 차남인 곽용운(郭龍雲, 1914~ 2008)으로 계승되어 3대에 걸쳐 도자의 전통은 지속될 수 있었다. 곽용업과 곽용운 형제에 의한 신흥사기점 도자기생산에 관한 전통은 이후 플라 스틱과 양은을 소재로 한 그릇이 유행함에 따라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로 인해 직계 아들에게 계승되지 못하였다. 이에 곽용운은 자신과 교류하던 신원수에게 제작기법ㆍ도구ㆍ원료채취 등 도자기 생산에 대한 전통을 전수하여 신흥사기점의 도 자기 생산은 지속될 수 있었다. 신흥사기점의 도자기 생산 전통은 1대부터 3대에 이르기까지 직계 후손에 의하 여 계승되었으며, 3대에서 4대의 과정은 도자기 생산 능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전 승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신흥사기점의 개요와 특징
Ⅲ. 신흥사기점 도자기생산의 전승과 도편분석
Ⅳ. 신흥사기점 도자가 지닌 의미와 성격
Ⅴ. 맺음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