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thesis examines the history and literary consciousness of Gyulsan(橘山) Lee, yu-won(李裕元, 1814∼1888) through the writings by him, and examines the meaning of his cultural historical significance. There is insufficient research on poetry theory and prose theory related to Lee, Yu-won's literature. His literary consciousness is examined by using the materials contained in his Oggyeonggoinggi(玉磬觚賸記), Imhapilgi(林下筆記), Gaogolyag (嘉梧藁略). His poetry theory is to realize the author's own holy spirit and to express his own individuality truthfully. It is to avoid bizarre characters or trivial phrases. On the other hand, prose theory contains morals and economy, and the expression is clear and plain, and the author's original intention and spirit are not damaged by external factors. As such, in relation to his literary consciousness, we can think of literary theories such as the Seonglyeongseol(性靈說), Sinunseol(神韻說). His era was a period of transformation in seosedongjeom(西勢東漸). Because he actively communicated with intellectuals as well as diplomacy between China and Japan, he reacted very quickly to a rapidly changing culture. However, in the process of examining his history and his literary consciousness, we captured aspects of sanggo(尙古)’s principle such as traditional monarchy, pure gomun(古文) in prose, and emphasis on ancient law in calligraphy and painting. It can be said that he has cultural historical significance, showing two aspects of spreading a new culture and preserving and improving one's own culture based on principle of sanggo(尙古).
한국어
이 논문은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남긴 저술을 통해 그의 역사 및 문예 의식을 검토하고 이러한 의식과 관점이 어떠한 문화 사적 의미를 지니는지 규명한 글이다. 먼저 이유원의 역사 및 문예 의식을 검토하고, 또한 문예 의식은 서화 (書畫)와 시문(詩文)의 두 가지 측면에서 각각 살펴보았다. 역사 의식과 관련해서는 역사를 소재로 한 다양한 저술 가운데 『체론류편(體論類編)』 과 『국조모훈(國朝謨訓)』을 고찰하였다. 이 책들은 모두 제왕학(帝王學) 을 위해 별도로 기획한 유서로서, 국왕의 체모를 보존하고 국가의 논의 를 결정하는 데 긴요한 참고 자료가 『체론류편이라면, 후대 군주에게 지침이 될 만한 핵심적인 국가적 사업을 역대 국왕의 사례에서 찾아서 제시한 자료가 『국조모훈』인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국가 차원에서 추 진해야 하는 문화 사업을 주요하게 다루었는데, 그것은 바로 문헌의 편 찬⋅간행⋅인쇄, 그리고 음악⋅회화⋅서예 등의 예술 방면에 대한 각별 한 관심이었다. 그는 역사 관련 저술을 통해 제왕학을 강조하는 동시에 국가 차원에서의 문화 사업에 대한 관심과 활용에 적극적이었다. 서화에 대한 인식과 관점에 대해서는 「옥경고잉기(玉磬觚賸記)」 소재 자료들을 위시하여 고찰하였다. 그는 시문에서 서화의 기풍과 서화에서 시문의 기풍이 융합된 문예 창작물을 지향하였다. 시문에서 융합한 서 화의 풍격은 맑고 빼어남에 있고, 서화에서 시문의 기풍이나 문자향이 융합하는 것은 학문의 온축과 마음의 순수함에 달려 있다. 시서화(詩書 畵)의 일치를 담보하되 그 일치하는 방식은 시문에서 서화의 기능적인 측면, 반대로 서화에서 시문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또한 서법이 고풍스 러움을 띠기 위해서는 해서 이전의 전서(篆書)와 예서(隸書)를 익혀서 옛 뜻을 담아내는 것을 관건으로 인식하였다. 시문에 대한 입론은 시와 문장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시에 대해서는 성령을 깨우쳐 개성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즉 성령설(性靈說)과 신운설 (神韻說)을 함께 아우르는 논의를 펼쳤고, 문장에 대해서는 도덕과 경륜 을 담고 있되 그 표현은 명백하고 평이하며 작자 본연의 의취와 기상이 훼손되지 않는 논의를 개진하였다. 한편 시문에 있어서 고증적 면모를 보이는 문학적 성취를 점검하였다. 주지하다시피 그가 살던 시대는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변혁의 시기였다. 중국의 아편 전쟁이나 일본의 개항을 목도한 우리나라의 지식 인들은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였는데, 이유원 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뿐만 아니라 상대국의 지식인들과도 활발하 게 소통하였기 때문에 급변하는 문화에 매우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이역(異域)에 대한 인식이나 서구 문물과 과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측 면이 발현된 저술이 바로 각종 유서와 필기잡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역사 및 문예 의식을 고찰하는 과정에서는 외려 전통적인 제왕학, 시문에서의 순정한 고문이나 경세지문(經世之文), 서화에서의 고법 중시 등과 같은 상고주의(尙古主義) 양상도 함께 포착이 된다. 이러한 상고주 의 측면은 자국의 문화를 자부하고 보존하려는 의식과 연계하여, 역사 의식에서는 국가 차원에서의 우리나라 문헌의 보존과 고유한 예술에 대 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문예 의식에서는 우리나라 작가의 개성을 강조하 는 성령설과 신운설, 고동서화에 대한 자료 수집과 기록을 집적하는 고 증적인 면모의 시작(詩作) 활동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이유 원은 신문물에 대한 박학(博學)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전파하는 동시에 상고주의를 토대로 자국의 문화를 보존하고 향상 시키려는 양가적인 모 습을 보이는 문화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역사 관련 저술과 제왕학
Ⅲ. 서화(書畫)에 대한 인식과 관점
Ⅳ. 시문론(詩文論)과 고증적 작품의 일단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