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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남해 화방사의 製紙와 서적 刊印 연구

원문정보

A Study on Paper Production and Book Publication of Hwabangsa Temple in Late Joseon Dynasty

조선 후기 남해 화방사의 제지와 서적 간인 연구

이상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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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focused on reviewing paper production and book publication as a duty of Hwabangsa Temple(花芳寺) through examining the archival records held by Hwabangsa Temple in Namhae, Gyeongsang province. Hwabangsa was established in 1638 after being burned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was rebuilt in 1713. However, it was destroyed again in 1740, restored and grown from 1741 to 1818. The main duty of Hwabangsa was to protect Chungnyeolsa(忠烈祠), which was royally chartered in 1663, but it was confirmed that paper production and book publishing were also duties. Hwabangsa had to produced and supplied a variety of papers to government offices as a duty. Hwabangsa made efforts to reduce labor by posting petitions to government offices, and government offices prepared measures to help Hwabangsa focus on producing papers that would be supplied to the major royal institutions. Hwabangsa had to send monks to local government offices for various book publication as a duty. In addition, Hwabangsa also participated in the largest scale of Buddhist texts publication project in the 18th century. The archival records on Hwabangsa show the reality of paper production and book publication performed by the temple as a duty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ich had not been actively studied. It is expected that various aspects of the temple will be revealed in the future.

한국어

이 논문에서는 경상도 남해 화방사(花芳寺)에서 소장한 기록물 분석을 통해서 조선 후기 관역(官役)으로서 수행한 화방사의 제지와 서적 간행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화방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1638년에 대략 창설되었고 1713년에 규모를 갖춰 중건되었다. 그러나 1740년에 다시 화재로 전소되었고 1741년에서 1742년까지 복구, 성장, 1818년에 일부 건물이 다시 중창, 이건 되는 등 형세가 안정되었다. 조선 후기 화방사의 주된 임무는 1663년에 사액된 충렬사의 수호였으나, 현존하는 10건의 완문과 절목을 통해서 제지와 서적 간인 활동도 역으로 수행했음이 확인된다. 화방사는 남해 지역의 관청, 향교부터 서울의 각사까지 다양한 종이를 제작, 납품하였다. 화방사는 지역(紙役)을 줄이고자 의송을 올리는 등 노력했고 관에서는 화방사가 진상지 제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했다. 첫째, 무지소(貿紙所)를 설치하여 이자를 불려 종이를 구입, 공급하도록 하였다. 둘째, 화방사에서 종이 만드는 데 필요한 재[灰]를 무리 없이 마련할 수 있도록 돈을 주어 구입하게 하였다. 셋째, 화방사가 폐망하지 않도록 승려 환속 방지와 벌목 금지 규정을 마련하였다. 화방사에서는 경상감영 7건, 통제영 3건, 전라 좌수영 1건의 서적 간인에 소속 각수, 인출승을 보내어 역을 수행하였다. 역은 대부분 중앙 간행본의 번각 작업이었고 남해의 용문사와 함께하기도 하였다. 또한 관역 외에 18세기 불교계 대규모 불서 간행 사업인 󰡔대방광불화엄경소초󰡕의 판각에도 참여하였다. 화방사의 기록물은 그간 활발히 연구되지 않았던 조선 후기 부역으로서 사찰이 수행한 관청의 종이 제작과 서적 간인의 실상을 보여준다. 향후 관역과 관련한 사찰의 다양한 모습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목차

<초록>

1. 서론
2. 화방사와 소장 기록물
3. 화방사의 제지(製紙) 활동
4. 화방사의 서적 간인(刊印) 활동
5. 결론
<참고문헌>

저자정보

  • 이상백 Lee, Sangbaek.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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