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특집 : 한국전쟁과 선박

한국전쟁 전후 전력 위기와 발전선의 역할

원문정보

Power crisis and power barge before and after the Korean War

전성현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영어

Electricity facilities and industries that were abnormally concentrated only in North Korea by the Japanese colonial rule made South Korea into a power crisis after 8.15 liberation. The first power crisis was North Korea’s “May 14 power outage”. The second power crisis was the Korean War. Although it was a short-term and temporary measure, it was possible to avoid and overcome two power crises with the introduction of power barges that can function as an immediate power facility. Power barges accounted for 20% of the total power at the time of the North Korean blackout, helping to avoid a power crisis. In addition, in the electricity crisis caused by the Korean War, it accounted for more than 50% of the electricity generated in 1952. Moreover, it played an important role in overcoming the crisis, occupying a third of the power of the Republic of Korea until 1955, when it was returned to its home country or switched to a new mission site. However, this role of the power barges would not have been possible without the port where the power barges could be anchored and stably developed, and the Busan Port equipped with transmission, distribution, and substation facilities. On the other hand, the introduction and utilization of power barges could not be viewed only as a positive aspect of the power crisis in South Korea. It was because the so-called UN forces did not pay the electricity bills used during and after the war using the power barge as an excuse, which made Korea's electricity companies and key industries unstable.

한국어

일제에 의해 북한지역에만 편중된 전력시설과 산업은 해방 이후 남한지역의 전력 위 기로 현실화되었다. 첫 번째 위기가 북한의 ‘5.14 단전’ 단행이었다. 두 번째 위기가 한국 전쟁이었다. 두 차례의 전력 위기를 모면하고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기적이고 임시적 인 조치이긴 하지만 즉각적으로 발전시설로 기능할 수 있는 발전선의 도입이었다. 발전 선은 북한의 단전 조치 직전에 자코나호와 엘렉트라호가 도입되어 전체 전력의 20%를 차지하며 전력 위기를 모면하도록 했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력 위기에서는 수리 중이던 자코나호를 다시 귀환 조치해 발전하는 한편, 소형의 발전선인 마쉬호, 와이즈멘 호, 화이트허스트호, 포스호를 긴급 사용했다. 더불어 3만 kw 발전선 임피던스호와 소형 발전선 세레낙호가 추가됨으로써 1952년 50% 넘는 발전 전력량을 차지했다. 나아가 본 국으로 귀환하는 1955년까지 남한 전력의 1/3을 차지하며 전력 위기를 극복하는데 중요 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 발전선의 이 같은 역할도 발전선이 정박하며 안정적으로 발 전할 수 있는 항만과 송전, 배전, 변전 시설을 모두 갖춘 부산항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 이었다. 부산항은 이미 1937년경 대구, 대전과 연결하는 한반도 남부의 전력망을 구축한 상태였다. 따라서 부산항을 중심으로 하는 전력망과 발전선으로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 력위기를 극복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한편, 발전선 도입과 활용을 남한지 역 전력 위기의 긍정적인 측면만으로 볼 수는 없다. 이른바 유엔군이 발전선 도입을 빌미 로 전쟁 기간과 그 이후 사용한 전력요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의 전력회사와 전력생산에 원료를 공급하던 기간산업 자체는 파괴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는 등 복합적인 측면으로도 작용했다.

목차

<국문요약>
Ⅰ. 서론
Ⅱ. 전력 수급 불안정과 전력시설 파괴
Ⅲ. 전력 위기 극복을 위한 발전선 도입과 활용
Ⅳ. 결론
<참고문헌>

저자정보

  • 전성현 Jeon Sunghyun. 동아대학교 사학과/석당학술원 부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 7,600원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