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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 신사와 아악(雅楽)의 접점 - ‘충(忠)’의 표상과 관련하여 -

원문정보

The point of contact between modern Japanese shrines and court music(雅楽) - In connection with the representation of loyalty -

남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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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Meiji Restoration ended the shogunate period and restored the political ideology of the monarchy. It brought about a major transformation not only in politics but also in overall social culture, and the Aakgye, which has repeatedly been altered and transformed due to political situations including shogun politics, was forced to make new changes. The existing traditional music institutions Ggagakuryo (雅楽寮) and Gakuso (楽所) had been integrated into the Gagaku Bureau (雅楽局) to mark a new turning point. Changes in the field of Gagaku included the collapse of the Iemoto (家元) system due to changes in court music and the dance system, the selection and compilation of music, training of musicians in Western music, and formation of orchestras. Additionally, it was opened to the public after breaking away from the musician system that had monopolized Gagaku. Gagaku was required to be organized in line with the Meiji government's national ideology of "the restoration of the monarchy,” which led to the mobilization of Aak to emphasize it This trend occurred with the "deification" of the modern state. In this study, it was considered that the process of deification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a shrine for Masashige Kusunoki, who has emerged as a representation of "loyalty" since the Edo period, is relat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Gagaku Bureau. The findings of the study confirm that the formation of the ideology emphasizing "loyalty"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Gagaku Bureau are closely related.

한국어

메이지유신은 막부시대를 청산하고 왕이 통치하는 왕정복고를 정치이념으로 삼 았다. 정치는 물론 사회 문화 전반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되었으며, 막부정치를 비롯한 정치적 상황으로 굴절과 변형을 거듭해온 아악계(雅楽界)도 새로운 변화를 강요받지 않을 수 없었다. 기존의 음악기관인 악소(樂所)가 아악국(雅樂局)으로 통 폐합되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아악계의 변화의 방향성은 크게 악무제 도의 변화에 의한 이에모토(전문가 집안)제도의 붕괴, 아악 곡목의 선정과 악보편 찬, 아악인들의 서양음악 학습 및 오케스트라 결성 등으로 나타난다. 또 아악을 독 점해온 악가(樂家 음악가문)체제에서 벗어나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메이지 정부의 국가이념에 맞는 아악의 정리가 요구되었고 이로 인해 ‘왕정복고’라는 국가이념을 구축하기 위해 아악이 동원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근대국가의 ‘영웅 만들기’ 와 함께 이루어졌다. 이 논문에서는 에도시대 이래 ‘충(忠)’의 표상으로 대두된 구 스노키 마사시게(楠正成)를 위한 신사의 설립이라는 신격화 과정이 아악국의 설립 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음을 고찰하였다. 그리하여 ‘충’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 형 성과 아악국 설립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들어가기
Ⅱ.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正成)의 신격화
Ⅲ. 미나토가와신사(湊川神社)와 아악
Ⅳ. 왕정복고와 아악(雅楽)
V. 나오기
【참고문헌】

저자정보

  • 남성호 Nam, Sung-ho.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구원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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