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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悠韓의 항일음악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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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Anti-Japanese Music Study by Han Yu Han of the Korean Independence Army

한유한의 항일음악 연구

양지선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제47집 2021.12 pp.20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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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Han Yu-han is an independence activist who worked in China. He left numerous anti-Japanese music. This anti-Japanese music contains all the efforts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he has walked. Therefore, it has important historical value. A total of 75 anti-Japanese songs have been created by him to insert into anti- Japanese opera or to promote military training and anti-Japanese awareness. Including songs that have not yet been fully gr asped, it is expected to exceed 100 songs. However, among the songs left by Han Yu-han, the same melody is often used. These songs show various aspects, such as using the same melody and reattaching the lyrics to them to r eborn as new songs or changing only the title. When the Sino-Japanese War broke out, he began to join China's navigation art group in earnest. Han Yu-han, who participated in the Korean Youth Battlefield Mission Corps in Xi'an, created and staged the anti-Japanese opera “Arirang” with them in 1940. At this time, "Korean March Song" which was written as the eighth insertion song, borrowed the melody of "The New Revolutionary military Song," which is said to have been made for the first time by Han Yu-han. After that, Park Youngman added Korean lyrics to make it a "Yalu River March". There were also cases where the same melody was used for several songs. Han Yu-han, who was active as an Liberation Army, created the "Korean March Song-Arirang Insertion Song". The melody of this song was used in the prelude to the anti-Japanese opera Arirang, and at the same time, it was also used as the sixth insertion song. Just as there was no border in music, the width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that Han Yu-han, who was struggling against Japan as an art, walked was very wide compared to other independence activists. China has been requesting the Korean Independence Army to send a leisurely dispatch for the education of war orphans at the Seomseo Nursery School. He created children's plays such as “Gwimu- (Seunglimugok)” and “New Next Generation with the children”, and composed most of the anti-Japanese music inserted into children's plays. Considering that Korea and China were jointly fighting Japan at the time, these songs can also be evaluated as part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한국어

한유한은 중국을 무대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수많은 항일음악을 남겼다. 이러한 항 일음악은 그가 걸어 온 독립운동의 노정을 모두 담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그가 항일가극에 삽입하기 위해, 혹은 군사 훈련과 항일의식 고취 등을 위해 만든 항일음악은 현재까지 총 75곡 정도로 파악된다. 여기에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곡들까지 포함하면 100여 곡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유한이 남긴 곡 가운데에는 동일한 멜로디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곡 들은 같은 멜로디를 활용하고 거기에 다시 가사를 붙여 새로운 곡으로 재탄생하거나, 혹은 제목 만 바꾸는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본격적으로 중국의 항적예술단체에 몸담기 시작하였다. 시안에서 한국청 년전지공작대에 가담한 한유한은 1940년 그들과 함께 항일가극 《아리랑》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 다. 이때 8번곡으로 쓰인 <한국행진곡>은 한유한이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전하는 <신혁명군가>의 멜로디를 차용하였다. 그 후에는 박영만이 한국어 가사를 붙여 <압록강행진곡>으로 만들었다. 동 일한 멜로디를 여러 곡에 사용한 경우는 또 있었다. 광복군으로 활동하던 한유한은 <韓國進行 曲-아리랑삽입곡->을 만들었다. 이 곡의 멜로디는 항일가극 <아리랑>의 <서곡>에 활용되었으며, 동시에 6번곡으로도 쓰였다. 음악에 국경이 없는 것처럼 예술로써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한유한이 걸었던 독립운동의 폭은 여 느 독립운동가와 비교해서도 매우 넓었다. 중국 측이 한국광복군에게 섬서제이보육원의 전쟁고아 교육 담당을 위해 한유한 파견을 요청해 왔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鬼舞(勝利舞曲)》, 《新的一 代》 등의 아동가극을 만들었고, 아동가극에 삽입된 항일음악 대부분을 작곡하였다. 당시 한중이 공동으로 일본과 싸우고 있었음을 생각할 때 이 노래들 역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중국망명과 항일음악가의 길
Ⅲ 항일음악의 종류와 연원
1. 항일가류
2. 항일가극 삽입곡
3. 아동가극 삽입곡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양지선 Yang Ji-sun.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학예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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