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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출토 여말선초(麗末鮮初) 소조상 연구

원문정보

A Study on the Buddha Clay‐statues in the Late‐Goryeo‐Early‐Joseon Period Excavated from Hoeamsa Temple Site in Yangju

이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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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study of Korean clay‐statues in the Joseon era tends to focus on the names and stylistic aspects of the Buddha clay‐statues that were created on a large scale after the Imjin Year Wa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n addition, there are few examples of Buddha claystatues in the Late‐Goryeo‐Early‐Joseon period, so there is a large research gap on the Buddha clay‐statues in this period. However, clay‐statues in the late‐Goryeo‐Early‐Joseon period were excavated at the Hoeamsa temple site, which has been excavated and maintained since 1997, providing important data for analyzing the changes and aspects of Buddha clay‐statues during this period. In addition, they provide a clue to understand the temple operation and reality of Hoeamsa temple, which flourished the most during the Late‐ Goryeo‐Early‐Joseon period. The Buddha clay‐statues excavated from the Hoeamsa temple site are small and mostly presumed to be Arhat statues. Theses clay‐statues were created during the Hoeamsa temple rebuilding period, which was most prosperous in the Late‐Goryeo‐Early‐Joseon period, and it is possible to take a look at the form and production technique of claystatues during this period. Hoeamsa temple clay‐statue holds the basic shape of the statue with rough clay on the back of the neck, and is made by applying fine clay on top of it, molding it in detail, and then coloring it and baking it. Clay‐statues made with this terracotta technique are rarely made after the production of Hoeamsa temple claystatues. Looking at the Seogiryoji site, where most of the Hoeamsa temple clay‐statues were excavated, there is a high possibility that it was converted into a Buddhist altar that enshrines 500 Arhats by placing a wide Buddhist altar during the 3rd rebuilding. In particular, in the background of creating 500 Arhats statues in Hoeamsa temple, it seems to be deeply related to the three great masters leading to Jijong, Naong, and Muhak along with the fashion of 500 Arhats belief. Like the Eungjinjeon at Seokwangsa temple, clay‐statues at Hoeamsa temple might have had Buddhist altars on three sides, and several altars would have been prepared and enshrined. These statues are believed to be 500 Arhats statues created with considerable efforts on a courtsponsored basis, particularly those statues associated with Muhak.

한국어

한국의 조선시대 소조상의 연구는 임란 이후에 대형으로 조성되는 소조 불상의 존명과 양식적 측면에 집중된 경향이 있다. 또한 여말선초에 이르 는 시기에는 소조 불상의 예들이 적어, 이 시기 소조 불상에 대한 연구 공백이 크다. 그런데 1997년 이후 발굴 및 정비가 이루어진 회암사지에서 여말선초의 소조상이 발굴되어, 이 시기 소조 불상의 변화와 양상을 분석하는데 중요 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여말선초에 가장 융성했던 회암사의 사찰운 영과 실체를 파악하는데 단서를 제공한다. 회암사지 출토 소조 불상들은 크기가 작으며, 대부분 나한상으로 추정 되는 편들이다. 이 소조상은 여말선초 회암사 중창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이 시기 소조상의 양식 및 제작기법을 살펴볼 수 있다. 회암사 소조상은 목심 등에 거친 점토로 상의 기본형태를 잡고, 고운 점토를 위에 발라 정 교하게 성형한 후에 채색하여 구운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테라코타 기법으로 만든 소조상은 회암사 소조상의 제작시기 이후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회암사 소조상의 대부분이 출토된 서기료지를 살펴본 바, 중창시에 크 게 확장되고 내부에 넓은 불단을 두는 등 큰 변화가 있었으므로, 이때 오 백나한을 봉안하는 불전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회암사에 오백 나한상을 조성한 배경에는 오백나한 신앙의 유행과 함께 지공, 나옹, 무학 으로 이어지는 삼화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회암사 소조상은 석왕사 응진전처럼 삼면에 불단을 두고 몇 개의 단을 마련하여 봉안하였을 것이다. 이 상들은 왕실 발원으로 상당한 공력으로 만든 오백나한상으로, 특히 무학과 연관되는 상들로 추정된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회암사지 소조상의 도상과 제작기법
1. 소조상의 도상
2. 제작기법
Ⅲ. 회암사지 소조상의 출토지와 봉안형태
1. 출토지 분석
2. 봉안형태
Ⅳ. 회암사지 소조상의 조성배경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이분희 YI, Boon-hee. 불교중앙박물관 팀장.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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