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기해사행(己亥使行, 1719) 당시의 쓰시마번(対馬藩)의 주의사항 - 통신사 접대의 근저에 깔린 의식을 중심으로

원문정보

Tsushima's precautions on 1719's Tongsinsa — Focusing on the underlying consciousness of Tongsinsa management

이재훈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영어

"Tsushima's precautions on 1719's Tongsinsa" attempted to confirm what part of the attention was paid to welcoming the 9th Tongsinsa dispatch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Previous studies so far have paid attention to the content such as food provided while welcoming Tongsinsa, but tend to be indifferent to the guidelines for what criteria they tried to provide it. Due to the failure of the Heirei-Kaikaku(聘禮改革) in 1711, Edo-Bakuhu pursued simplification of form in the 9th Tongsinsa. Hence Tsushima-Han responds to each banquet reception to follow the will of Bakuhu, not to prepare too politely. On the contrary, however, when it comes to providing food to Tongsinsa, Tsushima-Han shows special attention to prevent Tongsinsa from being dissatisfied. Tsushima-Han's actions against the "simplification" demanded by Edo-bakuhu were to eventually hear a good reputation and maintain Bakuhu's dignity. Therefore, for this purpose, it shows a very practical appearance. I think the maintenance of this prestige is a big keyword for Tsushima-Han to welcome Tongsinsa. The maintenance of this prestige is deeply related to Japan's willingness not to show its deficiencies, including cleaning and preparing food. For example, before Tongsinsa came to Japan, they warned each staff not to do anything that would be a shame for Japan. And this also caused a trouble between Tsushima’s staff and Tongsinsa. We should understand both the heartwarming hospitality and sometimes irreverent attitude Tongsinsa received in Japan as keywords of Japan's prestige.

한국어

본고는 조선 후기에 파견된 아홉 번째 사행인 기해사행을 맞이함에 있어 어떤 부분에 주의 를 기울였는가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선행연구들이 통신사를 맞이하면서 제공되 는 음식과 같은 컨텐츠에는 주목을 했지만 정작 이를 어떤 기준으로 제공하려 했는지 하는 가 이드라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경향이 있다. 에도 막부는 1711년의 빙례개혁의 실패로 9차 사행에서는 형식의 간소화를 추구하였다. 이 에 따라 쓰시마번은 각 접대지에서 오는 문의에 대해 막부의 뜻대로 “너무 정성스럽게 준비하 지 말라고 대답을 한다. 그러나 반대로 통신사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통신사측 이 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막부가 요구한 “간 소화”에 반하는 이 같은 쓰시마번의 행동은, 결국 좋은 평판을 듣고, 막부의 체면(위신)을 유지 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상당히 실리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위신의 유지는 쓰시마번이 통신사를 호행하고 접대하는 데에 있어 큰 키워드라고 생각한 다. 이 위신의 유지에는 청소를 하는 것, 음식을 준비하는 것 등 손님을 맞이하면서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여, 일본의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과도 깊은 관련 이 있다. 가령 통신사가 일본에 오기 전에 각 번사들에게 일본의 수치가 될 만한 일을 하지 않 도록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이는 쓰시마번사들이 통신사들과 충돌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통신사가 일본에 가서 받았던 극진한 대접과, 때로는 불손한 대접 역시 모두 일본의 위신이 라는 키워드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일본어

本研究の目的は、朝鮮後期に派遣された9回目の使行を迎えるに当り、對馬藩がどのようなところ に注意を払っていたのかを確認することにある。これまでの先行研究では、通信使を迎えて提供した 料理などのコンテンツには注目をしてきたが、これらがどのような基準のもとで提供されたのかというガ イドラインにはあまり関心を持っていなかった。 江戸幕府は1711年の聘礼改革の失敗により、享保信使の際には形式の簡素化を要求した。これ により、對馬藩も各御馳走所から寄せられてくる質問に対し、あまり丁寧に対応しないようにと返事を する。しかし、対島藩が通信使に料理を提供する際には、通信使側が不満を持たないように格別な 注意を払う場面が見受けられる。幕府が求めていた簡素化とは相反する對馬藩の行動は、結局、 好評を得た上で幕府と対馬藩の威信を高めようとしたことに基づいたものである。 この威信は、對馬藩が通信使を護行するにおいて、重要なキーワードとなると思われる。これは 掃除や料理の準備をはじめ、日本の恥となるところを見せないようにしたことと深く関連している。例 えば、通信使が日本に来る前に、対島藩は家臣らに日本の恥となりそうなことを言わないようにと誓 わせたが、これは使行中に對馬藩と通信使がぶつかる契機にもなる。 通信使が渡海後に受けた手厚い接待と不遜な接待は、日本の威信というキーワードをもって理解 するべきであると言えるだろう。

목차

1. 들어가며
2. 기해사행에 내려진 막부의 지시
3. 음식의 접대
4. 통신사 접대의 본질, 체면과 세평
5. 나가며
reference
abstract
abstract
abstract

저자정보

  • 이재훈 Lee Jae Hoon. 동의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 6,000원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