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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地問題をめぐる沖縄政界の共通認識 — 認識基盤としての沖縄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中心に

원문정보

A Common Recognition of Okinawan politics over the base issue — Focusing on Okinawan Identity as a Perceptional Foundation

기지문제를 둘러싼 오키나와 정계의 공통인식 — 인식기반으로서의 오키나와 정체성을 중심으로

韓東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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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examines the origin of Okinawan identity, which is being advocated by All-Okinawa in the confrontation between the Japanese government and Okinawa over the base problem. This article confirms that historical events, the Okinawa battle, the separation from peace constitution and then the occupation of US Army during the Korea war, had made Okinawan to desire for an anti-war peace and unarmed spirit which was came from the culture of the Ryukyu kingdom. Meanwhile, because of land requisition of US military, the Okinawan politics decided to push ahead with the reversion to Mainland of Japan. Okinawan politics had attempted to resolve the base problem by applying constitution to Okinawa. Although the Okinawan conservative had allowed the US military base, they had regarded the US base in Okinawa as a temporary expedient for their economy development. In other words, even if the Okinawan politics had different ways to resolve the base problem respectively, they had hoped for founding an Okinawa of peace. These kinds of Okinawan blueprint was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the perspective of the Japanese government over base problem only to end the history of defeat in the Second World War but maintain the US base in Okinawa for retaining US-Japan security system. In other words, the Okinawa identity originated from war experiences and a unarmed culture, and was the ideological basis for shaping a common recognition of Okinawan politics over base problem. Also, this is the background of the formation of All-Okinawa.

일본어

本研究の目的は基地問題をめぐる沖縄と日本政府との対立の中で、オール沖縄が掲げている沖 縄アイデンティティーの根源と歴史的に確かめることにある。そのため、とりあえず、沖縄政界がアイ デンティティーの背景と主張している諸事件を分析した。分析結果、沖縄戦、平和憲法との分離、 朝鮮戦争と米軍の長期占領という事件の中で、県民は琉球王国の文化であった 「非武の文化」と反 戦平和を願う心が作られたことが分かった。一方、米軍の強圧的な土地接収により、沖縄政界は日 本への復帰を推進しようとした。これは平和憲法と日本の経済的支援が沖縄に投射されて米軍占領 を終えさせるとともに、基地問題と解決しようとする意図から行った。このような認識はベトナム戦争と 沖縄返還交渉を経りながらも現われた。特に、保守系は米軍基地を認めたが、それは地域発展を ための一時的な受容であった。つまり、沖縄政界は方向性に対して差があったが、「基地なしの沖 縄」を希望していたといえる。この認識は返還を通じて敗戦の歴史を終結させるが、基地を維持しよう とした日本政府の基地問題に対する認識とは、根本的に異なる視覚だった。たとえ、沖縄保守系と 日本政府の意見合致のため、基地は存続されたが、平和の島に対する願望は本土政治と相違であ る沖縄アイデンティティーとして存在してきた。このような分析結果はアイデンティティーと基地問題の 現在に焦点を当てる既存研究を補い足し、沖縄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歴史的脈絡から明らかにした点 に、その意義を持つといえるだろう。

한국어

본 연구의 목적은 기지문제를 둘러싼 오키나와와 일본 정부의 대립 속에서 올-오키나와가내세우고 있는 오키나와 아이덴티티의 근원을 역사적으로 확인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먼저오키나와 정치계가 아이덴티티의 배경으로 주장하는 사건들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오키나와전투, 평화헌법과의 분리, 한국전쟁과 미군의 장기 점령이라는 사건 속에서 현민은 류큐 왕국의 문화였던 비무의 문화와 반전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편, 미군의 강압적인 토지 접수로 인해 오키나와 정치계는 일본으로의 복귀를 추진하고자 했다. 이는일본의 경제적 지원과 평화헌법이 오키나와에 투사되어 미군점령을 끝내고 기지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의도에서 이뤄졌다. 이러한 의식은 베트남 전쟁과 오키나와 반환 교섭을 거치면서도나타났다. 특히, 보수계의 경우 미군 기지를 용인했지만, 이는 지역발전을 위한 일시적인 수용이었다. 즉, 오키나와 정치계는 방향성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기지없는 오키나와를 희망했다고말할 수 있다. 이는 반환을 통해 패전의 역사를 종결하지만 기지는 유지하려 했던 일본 정부의 인식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비록 오키나와 보수계와 일본 정부의 의견 일치로 인해 기지가 존속되었지만, 평화의 섬에 대한 염원은 본토 정치계와는 다른 오키나와 아이덴티티로 존재해 왔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정체성과 기지 문제의 현재에 집중하는 기존 연구를 보완하여 오키나와 아이덴티티를 역사적 맥락에서 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목차

はじめに
1. 非武の文化をらう戰爭と基地建設の展開
2. 島ぐるみ闘爭と基地問題をめぐる沖縄政界の共通認識
3. 基地間題に對する本土と沖縄政界の認識比較
おわりに
reference
일문초록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韓東均 한동균. 연세대학교 지역학협동과정 일본지역학 석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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