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Kim Yun-sik (金允植, 1835~1922), who returned from a long exile in 1907, becomes the head of the Chungch’uwŏn (中樞府, Central Advisory Council) in April of the following year, and visits Japan in August of the same year with Ito Hirobumi (伊藤博文, 1841~1909) as an ambassador to prince Yŏngchin (Lee Ŭn 李垠, 1897~1970). The goal of his visiting Japan was to inquire after prince Yŏngchin as he was staying in Tokyo from December 1907 in the name of studying abroad after his appointment to the Crown Prince in 1907. But it was not the only purpose of his visit to Tokyo to meet prince Yŏngchin. Kim, while staying in Japan, had to carry out lots of official schedules, and particularly he attended the banquet held at the Shibajo villa where he composed antiphonal poems with Japanese eminent persons from various circles. The banquet where Chosŏn envoys to Japan and Japanese eminent persons from political, academic, judicial and cultural circles attended became naturally a place of diplomacy. What does that imply to visit the capital city of the aggressor as an envoy of a declining country with the very Resident-General of th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at that time, and to compose antiphonal poems with Japanese eminent persons from various circles in Sinitic Chinese which was lingua franca of the Sinographic sphere? This article examines the meaning of Kim's visit to Japan in 1908 and his antiphonal poetry composition at the Shibajo villa focused on Tongsa manŭm and Shibasankan noryo showasho.
한국어
1907년 긴 유배에서 사면되어 돌아온 김윤식은 이듬해 4월 中樞院 議長이 되고, 같은 해 8월 칙서를 받들고 英親王을 문후하기 위해 동경으로 떠난다. 1900년 8월 英王에 봉해지고 1907년 황태자에 책봉된 英親王 李垠(1897~1970)이 그 해 12월 유학의 명목으로 동경으로 건너가 체재하게 되자 그 문후를 위해 동경으로 향한 것이었다. 다만 김윤식의 이 동경행은 단지 영친왕의 문후만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김윤식은 일본에 체류하면서 여러 공식 일정을 수행하였으며, 특히 7월 29일에는 末松謙澄의 芝城山館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하여 일본 내 각계 인사들과 시문 창화를 하였다. 김윤식 일행이 참석한 芝城山館의 연회는 당시 일본의 정치⋅문화계의 핵심 인사들이 모두 참여하여 일대 외교의 장이 되었다. 기울어가는 나라의 사신으로서 침략국의 수장격인 인물 伊藤博文과 함께 침략국의 수도로 건너가 인질로 잡혀있다시피 하던 자국의 왕세자를 문후하고, 그곳 정치⋅문화계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참석한 연회에 참석하여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공동문어(lingua franca)였던 한문으로 시문을 작성하여 주고 받는 일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본고는 『동사만음』과 『芝城山館納涼唱和集』을 중심으로 1908년 김윤식의 일본 방문에서의 시문 창화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김윤식의 일본 여정과 『芝城山館納涼唱和集ㆍ輕妙唱和集』의 출간
Ⅲ. 芝城山館에서의 納凉雅集과 시문창화
Ⅳ. 김윤식의 芝城山館시문창화가지니는 의미
Ⅴ. 나오며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