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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전라북도 지역 콜레라 만연과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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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olera Pandemic in 1946 North Chŏlla Province and Its Political Economy

임종명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제61호 2021.03 pp.24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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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In late May and early June, 1946 when the cholera spread across South Korea, North Chŏlla Province was one of the national centers of the cholera epidemic. However, the late-June flooding brought forth the massive outbreak of cholera in the province, and thus it ranked 1st place in 9 metropolitan city and provinces altogether. The concentrated quarantine measures at late July lessened the pandemic situation of the province in August while the pandemic in North and South Kyŏngsang Provinces continued to be exacerbated. Thus, the title of ‘1st place of the pandemic’ was transfered from North Chŏlla Province to North Kyŏngsang Province. Even so, in relationship to population the pandemic situation in North Chŏlla Province was continually the most virulent in South Korea Kunsan, a contemporary major port city in North Chŏlla Province is note-worthy. Its port worked as the port on which Korean repatriates coming from China, the contemporary regional center of East Asian cholera pandemic, landed. Also, the city as the center of the contemporary contraband trade with China was activated with its human and material exchanges with China. Given this, it could be said that Kunsan could work as a center of the pandemic. However, its pandemic situation was comparatively tenuous. This was due to the fact that the city as ex-colonialist city was relatively well-equipped with urban infrastructures such as water supplies. More significantly, the pandemic situation was under control by the concentrated quarantine measures by the national and local authorities from the time of the initial outbreaks of cholera. The center of the pandemic in North Chŏlla Province was the area of Chŏngŭp, Kimje, and Puan, neighboring upon the Tongjin River. The pandemic of the area was basically due to the fact that the farm belt was poorly-equipped with medical and other social infrastructures. More direct was the economic situation of those destitute peasants who tilled the land even in the midst of the pandemic for their living. More significant was the locality of the area. It was a grain belt in South Korea upon which contemporary South Korean economy troubled with food shortage relied. The South Korean economic context of the farming region exposed its people to the outbreak of the cholera without any basic quarantine measures such as a sanitary cordon around plague spot, or traffic blockade. This constituted the context of the outbreaks of the pandemic cholera in the farm belt.

한국어

1946년 콜레라가 남한 전역으로 확산하던 5월 말 6월 초, 전라북도 지역은 남한에서 주요 발병지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6월 말 홍수로 말미암아 그 지 역에서는 콜레라 발병이 폭증해 7월 상반기에 전북 지역은 남한 9개 시・도 단위 지역 중에서 수위(首位)의 발병세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7월 하반기 집중적인 방역 조치 등으로 전북 지역에서는 8월 이후 발병세가 약화 된 반면 당시 경북이나 경남 지역의 발병세가 계속해서 악화함에 따라 ‘최악 의 발병세’라는 타이틀은 경북 지역이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북 지역의 인구 대비 발병세는 경남・북 지역의 그것보다도 악성의 것이었다. 1946년 전북 지역의 콜레라 유행과 관련해 주목되는 곳은 군산이었다. 군 산은 당시 동아시아 콜레라 병원지(病源地)였던 중국에서 오는 송환민의 착항 이었다. 또 그 지역은 중국과의 밀무역의 중심지로 그곳과의 인적・물적 교류 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군산은 주요 콜레라 발병지가 될 잠재 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군산의 콜레라 발병세는 상대적으로 미 약했다. 이것은 식민지 도시로서 상수도 등 도시 기반 시설이 상대적으로 구 비되어 있었다는 점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미약한 발병세는 직접적 으로는 콜레라 발병 초기 발병과 확산 시기부터 선제적 방역 조치가 집중적 으로 이루어졌던 결과였다. 전북 지역의 주요 발병지는 동진강 유역의 정읍과 김제, 부안 지역이었다. 동진강 연안 지역의 콜레라 만연 현상은 기본적으로 농촌 지역의 의료 및 사 회 기반 시설 부족과 관련된 것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그 현상은 빈한한 가 운데 농업 노동을 생계로 하는 그 지역민의 농가 경제라는 경제적 맥락을 가 진 것이었다. 이와 함께, 그 지역은 당시 곡창지대로서 당시 심각했던 식량 문제의 해결처였다. 이로 말미암아, 콜레라가 창궐함에도 그 지역에 대해서는 발병지와 외부 지역 간의 교통차단과 발병지 봉쇄・격리라는 당시의 기본적 방역 조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콜레라 창궐의 직접적 원인이었다.

목차

Ⅰ. 머리말: 1946년 남한 콜레라 유행
Ⅱ. 전북 지역의 콜레라 발병 추이
Ⅲ. 중심부 도시 지역의 콜레라 발병
Ⅳ. 주변부 농촌 지역의 콜레라 만연
Ⅴ. 맺음말: 콜레라 발병・만연의 역사・사회성
<국문초록>

<참고 문헌>

저자정보

  • 임종명 Im, Chong-Myong.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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