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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조선통신사와 회화교류

近世給画の指画と朝鮮画について- 延享五年本?寺での交流に關する疑問点

원문정보

Korean Finger Paintings and The early Modern Period Japanese Paintings - Questions about exchanges at Honkokuji Temple in the 5fh year of Enkyo -

근세회화의 지화(指畵)와 조선화(朝鮮畵)에 대해 - 1748년 혼코쿠지 교류에 관한 의문점

片山真理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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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encounter with "Finger painting, on Korean painting" in "Taishu Souvenir Book" was an opportunity to revisit the issues that had been piled up so far, and to change the perspective. The history of being introduced as a treasure of Kenninji Ryosokuin can be said to be one of the routes of the introduction of Korean paintings in Japan, and the existence of theTaishu Iteian rotation system can be positioned as a document for manuscripts. Then, the question about the exchange at Honkokuji is that the feast who went from Yamatokoriyama to Honkokuji in Kyoto was Nobutoki Yanagisawa, the second feudal lord, and the theory that Yanagisawa Kien also participated as a feast is lacking in the source, but the image Can be done. However, at present, the role of the feast of Honkokuji Temple in Kyoto in the 5th year of Enkyo is Nobuaki Yanagisawa, and 1 would like to make further efforts to discover historica1 materia1s. As for who refers to the forehead "Kien" written by Park Tokwon, there is confirmation that the possibi1ity of Minagawa Kien is the same as the 15th year of Minagawa Kien, according to the epitaph. The fact that the content of the inscription a1so made a name for itself overseas, that is, in Korea, is a category that can be convinced even if it is a slight1y exaggerated expression. And, a1though 1 can’t find the finger painting itse1f, about the printed book pub1ished by Choi Buk and the painter Lee Seongrin who came to Japan for the fifth year of Enkyo. The fact that the existence of Choi-Buk, who 1ived in Korea, was recognized in Japanese paintings, which main1y focused on Chinese paintings, was due to the demands and desires of painters in modern paintings and the tastes that the Japanese side wanted. 1 wonder if there was. Not on1y the abi1ity of the painter but a1so the existence of peop1e who enjoyed seeing it is important for the deve10pment of paintings. It seems that there was a1so the action of the eyes of the Kyoto townspeop1e and merchants, and not a11 the painters were interested in the arts that the painters had, and they were a1so very interested in the sty1e of painting as we11 as the technique. It is thought that there was an excessive effect of pursuing new things, or the fact that Kyoto was a p1ace where new things were happy.

한국어

『대마도 특산물 목록[對州士꿇物控]~의 ‘지두화 한화 이 [指畵韓 畵二]’와의 만남은 지금까지 산적된 과제에 다시 주목해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는 기회가 되었다. 겐닌지 [建仁풍]의 암자인 료소쿠인 [雨足院]의 보물로 전해져 오 는 역사는 이테이안[以업]魔] 윤번제도가 일본에서 조선회화(朝解 續휠)가 전래되는 하나의 루트로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역사 문헌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혼코쿠지[本固츄]에서의 교류에 관한 의문점은 야마토고 오리야마[大和都山l 에서 교토의 혼코쿠지로 옹 치소야쿠[홉번走彼; 향응담당]가 야나기사와 노부토커[柳앤信鴻] 2 대 번주이며, 야나 기사와 기엔[柳況벌園]도 치소야쿠로 참가했다는 설에 대해서는 사료가 불분명하나 이미지를 그려볼 수는 있다. 현 상황에서는 1748 년의 교토 혼코쿠지의 치소야쿠는 야나기사와 노부토카이며,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 사료(史料) 발굴에 더 힘쓰고자 한다. 박덕원펼(朴德源筆)의 액자(顯字) <기엔[벌園]>이 가리커는 것 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미나가와 기엔이 15세 때의 일과 1748 년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고 그 내용도 해외 즉, 조선 에서 이름을 떨쳤다는 점은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도 납득이 가는 범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화 그 자체는 찾을 수 없지만, 1748 년 일본을 찾은 화원 이성린(李聖職)과 최북(崔北) 게재 판본(版本)에 대한 것입니 다. 중국회화를 주류로 연구를 거듭해 온 일본의 화단서 최북의 존재가 인정받은 것은 근세회화에 있어 18 세기 무렵 화인(뿔人)들 의 요구와 욕구, 일본 측이 원하던 기호(뺨好)에 있었던 것이 아닐 까한다. 화가의 능력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는 것을 즐기는 존재도 그림 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교토의 효닌[때人; 상인]화인들이 갖춘 기예(技표)와 기법(技法) 외에 화풍에도 큰 관심이 있어 새로운 것 을 추구한, 혹은 새로운 것이 환영받는 교토라는 지역 특성도 크 게 작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목차

1. はじめに一指画, 韓画の傳來
2. 近世給面,18世紀における指画について
3. 延享五年本?寺での交流に關する疑問点
4. まとめにかえて
參考文獻

저자정보

  • 片山真理子 Katayama Mariko.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 부속 고미술연구소 시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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