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When Shim Yeon-soo was in school, Yongjeong Kookmin High School was a national ideological device under Japanese colonialism. For him, who internalized the device, the ‘nation’ was either ‘Manchuria’ or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Until graduating in December 1940, his writing is in conformity with Manchuria’s national ideology. This problem is also a problem of his ‘masculine’ poetry. The interaction between his poetry and railroad travel, one of the political and educational medi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deepens his identity as a Japanese people. Shim Yeon-soo's literature has changed since April 24, 1941, who wrote
한국어
심연수의 재학 시절 동흥중학교(용정국민고등학교)는 일제의 국가이데올로기적 장치였다. 그 장치가 내면화된 그에게 ‘국가’는 만주국이거나 대동아공영권이었다. ‘민족’도 그러하다. 1940년 12월 졸업하기까지 그의 글쓰기는 만주국의 국가이데올로기에 순치돼 있다. 이 문제 는 그의 ‘남성적’시풍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른바 ‘진취적’인 그의 시풍은 반성이나 회의와 일 정한 거리가 있다. 그의 시풍과 일제의 정치교육적 매체의 하나인 철도여행의 상호작용 안에 서 그의 일제 신민화가 심화된다. ‘주어진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시대와 불화하는, 문학의 핵 심 역할과 거리가 멀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가난한 거리>를 쓴 1941년 4월 24일 이후 심연 수 문학은 변화한다. 도일 후 ‘왕도낙토’에 대한 선망이 깨지면서 시적 아니마가 우세해지고, 유학 시절 반일 유학생들과 교류하고 여운형과 만난 것을 계기로 그의 작품은 질적으로 향상 된다. <만주>, <벽>, <파영> 등이 그러한 시다. 하지만 <만주>, <행복>을 쓴 1942년에도 그는 <문학의 사명>과 같이 군국주의에 봉사하는 문학의 역할론에 동조하는 글쓰기를 한다. 이러한 한계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안진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쓴 단편 <향자>, <석 마>에 이르어서야 극복되기 시작한다. <향자>, <석마>는, 도일전의 단편 <서류>, <농향>, <농가>와 달리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조선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목차
1. 만주의 교육 삼국지와 동흥중학교
2. 용정국민̇ ̇고등학교 황민화 교육의 내면화
3. 반성과 선망의 이율배반, 을 극복하는 세 편의 시
4. 단편 <향자>와 <석마>의 정체성 찾기
5. 요약 및 과제
참고문헌
Abstrac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