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Korean people and the Manchu people have long lived as neighbors in Northeast Asia, and they have something in common as an acceptor of Confucian culture. The study of the traditional culture of the two peoples helps to understand cultural exchanges in East Asia. This paper tries to examine the process of accepting the Zhuzi Jiali of the Korean people and Manchus. The central forces of the Korean people and Manchus, who founded the centralized feudal dynasty, accepted the "Zhuzi Jiali" according to their own needs. The aristocrats who founded Joseon needed to establish a cultural identity distinct from the old aristocrats of Goryeo, and the officiant ceremony was a good alternative. Manchus, who conquered the midfield, had the task of ruling a large number of Han Chinese with a small population. Manchus also tried to secure cultural homogeneity with the Han, accepting the runner's wedding. The Korean people and the Manchus’s acceptance process of "Zhuzi Jiali" shows commonality in that it is voluntary and active acceptance. The difference is also clear.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the acceptor and the aspect. The Korean people were strongly led by the nobility, but in the case of the Manchurians, acceptance was led by the emperor. And In the case of Joseon, cultural transmission has a one-way nature. There is only a process in which the Han people's cases of runners are introduced to Joseon and accepted, and customs, including the wedding of the Korean people, have not been passed on to the Han people. On the other hand, the way the Manchus chose was cultural transactions. Instead of actively accepting the rituals of the Han people, the Manchurians pushed the Han people to accept their own clothing and perversion.
한국어
한민족과 만주족은 동북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이웃 민족으로 살아왔으며, 유교 문화의 수용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민족의 전통 문화에 대한 연구는 동아시아 문화교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본고는 한민족과 만주족의 주자 혼례 수용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주자사례 수용 전에도 두 민족의 전통 혼속은 유사성을 보였다. 모두 노역혼에서 남귀여가혼으로의 발전 경로를 겪었다. 그러다 조선과 청을 건국한 세력은 각자 자신의 필요에 따라, 『주자가례』를 수용하였다. 조선을 건국한 양반 사대부 세력은 고려의 구 귀족과는 구별되는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으며, 주자가례는 좋은 대안이었다. 1644년 중원을 제패한 만주족은 소수의 인구로 다수의 한족을 통치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만주족 역시 주자의 혼례를 수용하면서, 한족과의 문화적 동질감을 확보하려 했다. 두 민족의 『주자가례』 수용 과정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수용이라는 점에서 공통성을 보인다. 두 민족 모두 문화의 전달자에 의해 강제 이식된 것이 아니다. 수용자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차이점도 분명하다. 수용 주체와 양상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민족은 사대부들에 의해 주도된 측면이 강하지만 만주족의 경우 황제에 의해 수용이 주도되었다. 혼례 수용 과정도 다르다. 조선의 경우 문화의 전달이 일방향적 성격을 가진다. 한족의 주자사례가 조선에 유입되고 수용되는 과정이 있을 뿐이고, 한민족의 혼례를 비롯한 풍속이 한족에게 전달된 바는 없다. 반면 만주족이 선택한 방식은 문화적 거래였다. 만주족은 한족의 의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의 복식과 변발을 한족이 수용하도록 관철시켰다.
목차
1. 서론: 동아시아론의 시사점
2. 수용대상: 『주자가례』에 대한 태도
1) 한민족: 주자사례와 고유 혼속의 대립
2) 만주족: 주육례와 주자사례의 선별적 수용
3. 수용주체: 사대부와 황제의 역할
1) 한민족: 사대부의 다양한 개혁안
2) 만주족: 황제의 확고한 개혁의지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