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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라도 전주의 국자도고(麴子都庫) 운영에 관한 소고

원문정보

A Brief Study on Managing Gukjadogo in Jeonju, Jeolla-do in 19th Century.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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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yeast is need to brew liquor unconditionally, put on the list of the market in Joseon dynasty. Gukjajeon, a store selling the yeast, was abolished in the reign of King Yeongjo for the Prohibition, but in 1781, was rebuilt as Eungukjeon. At that time in Joseon, Dogo business controled by merchants with a capital and distribution network was invigorated after a market-based commercial system was collapsed with Sinhae-Tonggong. There was a change in the market of the yeast, for example the development of ‘Gukjadogo’ in Jeonju, Jeolla-do and Suncheon, Pyeongand-do in the late 19th century. In 1885, ‘Gukjadogo’ in Jeonju was changed to ‘Gukjachuseso’ where Kim Wan-yong was nominated to a master. It belonged to ‘Foreign Office (Tongrigyoseoptongsangsamuamun).’ This is the first case that the local tax is managed to a central organization. The tax(‘Gukjase’) was used for official purpose originally, but for it was misappropriated by local officials, since then managed by central organization. This organization dispatched a tax inspector to Jeonju for the management, but misappropriating it was not eradicated. This tax in Jeonju was 2,000 ryang for a year. it was used for the financial affairs of Uijeongbu. In that time, Joseon Dynasty encountered a different system from the past with the rapidly changing world situation. These changes involved large costs, so a central organization was forced to suffer from the shortage of money. That is why ‘Gukjadogo’ is permitted in Jeonju. For this tax was necessary for making up for the shortage and the organization wanted to prevent wasting of rice through restraining the sale of the yeast. ‘Gukjadogo’ and ‘Gukjase’ are important source of taxation in order to look at various changes in Joseon Dynasty. Jeonju, the commercial and distributive hub, is at the heart of them.

한국어

누룩은 술을 빚는데 반드시 필요했던 것으로 본래 시안에 등록된 물종이었다. 누룩을 파는 국자전은 영조대 금주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781년(정조 5)에 은국전 으로 복설되었다. 당시 조선은 신해통공(1791년)을 계기로 시전중심의 상업 체제가 무너지면서 자본력과 유통망을 갖춘 상인들에 의한 도고상업이 활성화되게 된다. 누룩 시장에도 그러한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19세기 후반에 평안도 순천지역 과 전라도 전주 지역에 형성된 ‘국자도고’가 그 예이다. 전라도 전주지역은 1885년에 기존에 있었던 국자도고를 ‘국자추세소’로 변경하 고 김완용을 추세주인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국자추세소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에 속하게 하는데, 이는 그간 지방에서 자율적으로 걷혀 지방에서 쓰였던 세금을 중앙기관에서 관리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첫 사료이다. 본래 국자세는 公用에 보 태기 위해서 걷었던 것인데 중간에서 관리자들이 착복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 세금의 관리를 지방에 맡기지 않고 중앙기관에서 직접 관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리고, 국세감관을 전주에 파견해 철저하게 관리하게 하고 상납분을 올리지 않은 담 당자를 처벌하기도 하지만 중간 착복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한편 전라도 전주에서 상납하는 국자세는 연간 2,000냥으로 이는 의정부의 經用 을 보충하는데 쓰였다. 당시 조선은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기존과는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 내야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새로운 변화들은 많은 비용을 수 반했고 중앙기관은 재정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조선에서 도고의 폐해 를 알고 혁파하려는 노력들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전주 지역에서 국자도고가 운 영되었던 것은 국자세가 항시적으로 재정 부족에 시달렸던 중앙기관의 부족분을 메우는데 꼭 필요한 세원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술을 빚는 기본 재료인 누룩의 판 매를 억제함으로써 미곡의 낭비를 막고자하는 의도로도 운영되었다. 국자도고와 국자세는 당시 조선의 급변하는 상황과 새로운 시장질서의 재편, 그리고 세금의 용 도변경과 징수기관의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세원으로 그 변화의 중심에 는 인구와 물산이 집중되어 있던 상업유통의 중심지 전주가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麴子시장의 발달과 도고의 출현
3. 전주 국자도고 운영의 추이
4. 전주 국자도고 운영의 목적
1) 중앙기관의 需要 충족
2) 누룩 매매의 통제를 통한 낭비 방지
5. 맺음말
참고문헌

저자정보

  • 박소영 Park So-young. 전북대학교 박사 수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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