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Chinese archaeology has a unique direction. This is evident in the fact that archaeology is treated as a part of history science and its academic purpose is to contribute to the restoration of history through physical materials. Chinese archaeology clearly has a historical barrier. This tendency, so-called "History oriented Archaeology," is clearly different from Western archaeology, which seeks to explore the context of human civilization from a universal perspective through material culture. Archaeology developed in the West in the 19th century. It was first introduced to China around the end of the 19th century, but it was still unfamiliar to the Chinese. Therefore, it needed a "process" that would be accepted by China. The acceptance process of archaeology, which began rapidly in 1920, was influenced by the historical, social and cultural environment of the period. During this period, the collapse of the traditional system was in full swing, and new values and principles were developed to replace it. The New Culture Movement encouraged the acceptance of Western culture with democracy and science as the value of the earth. The archaeological research by Western scholars at this time was recognized as a great alternative to the traditional history system that was false to the Chinese eye. In this sense, archaeology in the Chinese perspective was no different from history. Those who accepted archaeology, regardless of whether they had studied abroad or were traditional researchers, remained Chinese. They tried to build a true history through scientific methods, but they grew up under the traditional system and still understood Western archaeology from a Chinese perspective. In China, traditional studies such as epigraphy and Western archaeology in the West were recognized as similar studies, and the two began to mix. The historical orientation of epigraphy flowed into archaeology in the process. The historical orientation of Chinese archaeology has become a stigma that cannot be wiped away by the excavation of Yinxu. The excavation of the Yinxu, which began in 1928, not only proved the existence of the Shang dynasty but also proved that the traditional literature was not completely full of fiction. The Yinxu excavation strongly gave the Chinese the impression that it should contribute to restoring the history of archeology by restoring the perpetual history and national pride that was trampled upon under the invasion of Western powers. Various environment that influenced the process of accepting archaeology has added an the trend of vindicating textual records to Chinese archaeology. Western archaeology has "transformed" in China. Western studies, accepted by Chinese society, did not exist as others and transformed into me, but to become me required a process of coming into contact with and transforming the environment surrounding me.
한국어
중국 고고학에는 독특한 지향성이 있다. 그것은 고고학을 역사학의 한 분과학문으로 취급하며, 그 학문적 목적을 실물자료를 통해 역사 복원에 이바지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데 잘 나타난다. 중 국의 고고학에는 분명히 역사벽(癖)이 있다. 이른바 ‘증사주의(證史主義)’라 불리는 이 경향성은 물질문화를 통해 인류문명의 발전 맥락을 보편적 시야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서양의 고고학과는 분명히 다르다. 고고학은 19세기를 거치면서 서양에서 발전한 학문이다. 그것이 중국에 처음 소개 된 것은 19세기 말엽부터의 일이지만, 중국인에게 그것은 여전히 낮선 학문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중국에 수용되는 ‘과정’을 필요로 했다. 1920년경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한 고고학의 수용 과 정에는 그 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작용했다. 이 시기에는 전통체제의 붕괴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이를 대신할 새로운 가치와 이념이 성장 했다. 신문화운동은 민주와 과학을 지상의 가치로 하여 서양 문화의 수용을 촉구했다. 이 무렵 진 행된 서양 학자들의 고고학적 조사 활동은 중국인의 눈에, 거짓으로 가득 차 있던 전통적 역사체 제를 대신할 수 있는 절호의 대체재로 인식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인의 시야에 비친 고고학은 역사학과 다르지 않았다. 고고학을 수용할 수 있는 주체는 외국 유학을 경험한 자나 구래(舊來)의 학자를 막론하고 여전히 중국인이었다. 이들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진실된 역사를 건설하고자 했지만, 전통체제 하에서 성장한 그들은 여전히 중국적인 시각에서 서양의 고고학을 이해했다. 전 통적 학문인 금석학과 서양의 고고학은 유사한 학문으로 인식되고, 그로 말미암아 양자는 뒤섞이 기 시작했다. 금석학의 역사학적 지향성은 이 과정에서 고고학에 유입되었다. 중국 고고학의 역사학적 지향성은 은허 발굴을 통해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28년 시작된 은허 발굴은 상 왕조의 존재를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전래문헌이 완전히 허구로 가득 찬 것은 아니라는 점도 입증했다. 은허 발굴은 서구 열강의 침략 아래 유린된 유구한 역사와 민족적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중국인에게 모범적인 고고학이란 역사를 복원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고고학 수용의 과정에 작용한 각종 환경은 중국의 고고학에 증사주의적 경향을 덧씌웠다. 서양 의 고고학은 중국으로 건너와 ‘변용’되었다. 중국 사회에 수용된 서양의 학문은 타자로 존재하지 않고 자아로 변모했지만, 자아가 되는 것은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 접촉하고 변모하는 과정을 필요로 했다.
목차
Ⅱ. 신문화운동과 근대 고고학의 도입
Ⅲ. 수용과 변용
1. 파구립신: 고사변파와 고고학
2. 전통 학문과의 조우: 금석학과 고고학
3. 예기치 않은 전환: 은허 발굴의 영향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