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The Changes in Choi Chi-won’s Understanding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 Focusing on Sasanbimyeongbyeongseo (四山碑銘幷序)
초록
영어
In this thesis, “Jingamseonsabimyeongbyeongseo(眞鑒禪師碑銘幷序)”, “Daesungboksabimyeongbyeongseo(大崇福寺碑銘幷序)”, “Daenangheyhwasangbimyeongbyeongseo(大朗慧和尙碑銘幷序), and “Jijeungdaesabimyeongbyeongseo(智證大師碑銘幷序)” were examined in order taking the time of completion and the period of compilation of Sasanbimyeongbyeongseo(四山碑銘幷序) into consideration, and the changes in Choi Chi-won’s understanding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in Sasanbimyeongbyeongseo were investigated. Sasanbimyeongbyeongseo covers particularly Choi Chi-won’s opinions about Confucianism and Buddhism considerably. Choi Chi-won basically held fast to his duty as a Confucian scholar while writing Sasanbimyeongbyeongseo in obedience to a royal command, but his viewpoint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changed a lot in the process of writing four Bimyeongseo for more than 8 years. When he first wrote “Jingamseonsabimyeongbyeongseo”, he emphasized that the purpose of Confucianism and that of Buddhism were not different in their essence, but in “Daesungboksabimyeongbyeongseo”, he began to regard Buddhism more superior in a different context and viewpoint. In “Daenangheyhwasangbimyeongbyeongseo”, he inquired into the matter of Seonkyo(禪敎) in Buddhim rather than compared Confucianism and Buddhism, and in “Jijeungdaesabimyeongbyeongseo”, he considered Buddhism more superior, converged Confucianism, and emphasized Seon(禪). In particular, Choi Chi-won had the characteristic of stressing the independence of Korean people and nation regardless of Confucianism or Buddhism in the process of writing Sasanbimyeongbyeongseo. In this thesis, the changes in Choi Chi-won’s recognition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were studied through Sasanbimyeongbyeongseo, and Choi Chi-won’s ideological characteristics, who independently negotiated Confucianism and Buddhism, were examined. Based on this research, the way to investigate the origin of Korean ideologies is expected to be paved through the reexamination of Korean history of negotiating Confucianism and Buddhism.
한국어
본 논문에서는 사산비명병서(四山碑銘幷序)의 완성 시기와 찬술 기간을 고려하여 『진감선사비명병서(眞鑒禪師碑銘幷序)』와 『대숭복사비명병서(大崇福寺碑銘 幷序)』와 『대낭혜화상비명병서(大朗慧和尙碑銘幷序)』와 『지증대사비명병서(智 證大師碑銘幷序)』의 순서대로 살펴보고, 사산비명병서에서 유교와 불교에 관한 최 치원의 인식이 어떻게 변하는지 고찰하면서 한국의 유불(儒佛) 교섭사를 재탐색해 보고자 하였다. 사산비명병서에는 특히 유교와 불교에 관한 최치원의 견해가 많이 담겨 있다. 최 치원은 왕명을 받들어 사산비명병서를 찬술하면서 기본적으로 유학(儒學)자의 본 분을 견지하고 있으나, 유교와 불교를 바라보는 인식은 8년 이상 네 개의 비명병서 를 찬술하는 과정에서 크게 달라진다. 처음 『진감선사비명병서』를 찬술할 때에는 본질적 측면에서 유교와 불교의 교의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대숭복사 비명병서』에서부터는 맥락과 관점을 달리하여 불교를 우위에 두기 시작한다. 『대낭 혜화상비명병서』에서는 유교와 불교를 비교하기보다는 불교 내부의 선교(禪敎) 문 제에 천착하는데, 『지증대사비명병서』에 이르러서는 불교를 최상위에 두고 유교를 통섭하면서 불교의 선(禪)을 더욱 강조한다. 무엇보다 최치원은 위와 같이 사산비명 병서를 찬술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과 국가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유교와 불교를 통섭하는 특징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사산비명병서를 통해 유교와 불교에 관한 최치원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추이를 살피면서, 주체적으로 유교와 불교를 교섭하는 최치원의 사상적 특성을 고찰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한국의 유불(儒佛) 교섭사를 재탐색하면 서 유교와 불교의 교의를 내함(內含)하는 한국사상의 특수성을 더욱 심층적으로 연 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사산비명병서(四山碑銘幷序)의 완성 시기와 찬술기간에 따른 최치원의 유불인식(儒佛認識) 변화
1) 『진감선사비명병서』에서 최치원의 유불인식
2) 『대숭복사비명병서』에서 최치원의 유불인식
3) 『대낭혜화상비명병서』에서 최치원의 유불인식
4) 『지증대사비명병서』에서 최치원의 유불인식
3.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