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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존재사유에서 언어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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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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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하이데거 사유의 근본 물음은 '존재 물음'이지만,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에서는 언어의 문제 또한 중요하다. 그런데 이 언어에 대한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미 철학 계통의 언어 철학에서의 언어의 문제와 우리가 일상적이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언어의 문제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왜냐하면 하이데거의 언어의 문제는 그러한 것과는 달리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하이데거가 말하고자 하는 언어는 '존재의 집으로서의 언어'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에 대해 말하기 위해 하이데거는 소위 '전회'라고 불리는 '언어의 전회'를 행하는데, 그것은 전통 형이상학적인 언어로부터 존재의 언어에로 이행함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언어인 전통 형이상학적인 언어는 이미 '황폐화'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언어의 본질'을 이미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행한 사유 속에서 필요한 작업은 역시 기존의 언어를 해체하는 작업일 것이다. 그것은 어원론적 분석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때 이 분석작업은 존재의 흔적을 역추적하고,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자하는 것이다.그런데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자 하는 사유 속에서 나타난 언어가 바로 '존재의 언어'이다. 이때 이 존재의 언어의 실상은 말할 것도 없이, '존재', '존재의 진리', '사태'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언어가 말한다', '언어의 본질은 본질의 언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언어가 말한다', '언어의 본질은 본질의 언어다'라는 것은 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것으로 압축될 수 있다. 왜냐하면 '언어가 말한다'고 할 때, 여기에서의 '말하는 자'는 언어인데, 그 언어가 말하는 내용은 존재의 진리이고, '언어의 본질은 본질의 언어이다'고 할 때, 그 언어의 본질은 존재의 언어로서, 존재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언어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존재의 집'일 것이다.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인간이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언어가 말하는 것'을 따라 말할 뿐이다. 즉 인간은 언어가 '정적의 울림'으로 말할 때, 그것에 귀 기울이는 한에서나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이데거의 이러한 이야기들의 가능근거가 무엇일까 하는 것

목차

요약문
1. 들어가는 말
2. 형이상학적 언어에서 새로운 언어에로의 이행
3. ‘존재의 집’으로서의 언어
3.1 ‘언어가 말한다.’
3.2 ‘언어의 본질’은 ‘본질(현성)의 언어’다.
3.3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4. 존재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 그리고 근본기분
5. 맺는 말
참고문헌

저자정보

  • 문동규 건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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