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이 글은 하이데거의 존재사유에서 ‘형이상학의 종말’이 무엇이고, 이 형이상학이 종말에 이르렀다고 하면 사유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 ‘형이상학의 종말’은 형이상학이 가장 극단적인 가능성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 즉 철학사 또는 형이상학사가 가장 극단적인 가능성에로 모아진 것을 의미하는데, 이 ‘형이상학의 종말’에서 ‘종말’은 ‘완성’으로서 ‘장소’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형이상학의 종말은 ‘의지에의 의지’에 의해 나타난 ‘정돈’과 ‘기술’을 통해, 그리고 철학이 ‘학문’이 되면서 그 학문이 ‘기술화’ 되었을 때 이루어진다. 이때 형이상학의 종말의 장소는 바로 지금의 현 시대가 된다. 왜냐하면 지금의 이 시대엔 ‘정돈’, ‘기술’, 그리고 학문의 ‘기술화’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고유하게 있지 못하면서 단지 ‘부품’ 내지는 ‘정보’로만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에겐 새로운 사유와 그 사유의 과제가 요청될 수 있을 것인데, 여기에서 사유의 과제는 철학이 시작될 때 이미 나타난 존재의 진리인 ‘알레테이아’, 즉 ‘비은폐성’이며, 이것에 응답하는 사유가 바로 새로운 사유인 ‘본래적 사유’, 즉 ‘존재의 사유’다. 그런데 이렇게 존재의 진리인 비은폐성(알레테이아)에 응답하는 사유인 ‘존재의 사유’는 인간 현존재의 근본태도인 ‘초연한 내맡김’, 즉 표상적 사유의 근본 특징인 ‘욕구’로부터 벗어나 ‘사물’에로 자신을 내맡기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러한 사유는 전통형이상학적 사유방식인 ‘표상적 사유’와는 완전히 다른 사유다. 왜냐하면 표상적 사유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앞에 세워 장악하려는 사유로서 형이상학의 종말을 이끈 사유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존재의 사유’는 존재자를 ‘존재하게 하는’ 사유로서 존재의 진리의 열린 장(환히 트인 터)인 그 곳으로 진입하여 존재의 소리 없는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존재자를 그 자신으로 있게 하는 사유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이 종말을 고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청되는 사유는 당연히 존재의 사유가 되는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이 사유를 통해 전통형이상학이 주장해 온 ‘일치설’, ‘확실성’이라는 진리관도 보증 받을 수 있게 있게 된다. 그렇다면 하이데거가 형이상학의 종말과 사유의 과제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그가 표명해 온 전통형이상학의 해체와 그 극복을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기타언어
In dieser Arbeit handelt es sich um das Ende der Metaphysik und das Problem des Denkens im Seinsdenken M. Heideggers. Das Ende der Metaphysik ist der Ort, dasjenige, worin sich das Ganze ihrer Geschichte in seine äußerste Möglichkeit versammelt. Das Ende der Metaphysik zeigt sich als der Triumph der steuerbaren Einrichtung einer ‘wissenschaftlich-technischen' Welt und der dieser Welt gemäßeren Gesellschaftordnung. Die Metaphysik endet im gegenwärtigen Zeitalter. Denn es ist das Zeitalter, das das Seiende ist nur Bestand und Imformation. Welche Aufgabe bleibt dem Denken am Ende der Metaphysik noch vorbehalten? Der Aufgabe des Denkens ist Ἀλήθεια, die Unverborgenheit, die ist eine Wahrheit des Seins. Aber sie bleibt in der Philosophie ungedacht, wenngleich im Beginn der Philosophie von der Unverborgeneit gesprochen wird. Und dann was ist das Denken über die Unverborgenheit? Es ist ein Denken des Seins. Dieses Denken ist das Entsprechen, das spricht, insofern es auf den Zuspruch des Seins achtet. Also das Denken ist ein Entsprechen zum Sein des Seienden. Daher das entsprechende Denken, d.h. das Denken des Seins ist nicht mehr Philosophie, weil es ursprünglicher denkt als die Metaphysik. Nötig ist in der Zeitalter : weniger Philosophie, aber mehr Achtsamkeit des Denkens, d.h. das denken über die Unverborgenheit.
목차
1. 시작하는 말
2. 형이상학의 종말
3. 사유의 과제와 새로운 사유
1) 사유의 과제
2) 새로운 사유
4. 맺는 말
참고문헌
Zusammenfas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