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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善覺寺(젠가쿠지) 소장 1583년 <제석천도(帝釋天圖)> 연구

원문정보

A Study on the <Painting of Indra> in 1583, Kept by Sengaku-ji, Japan

류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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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Painting of Indra, kept by Sengaku-ji of Tokushima in Japan, shows the production period as 1583, which is the only year-recorded work of paintings of Indra in the form of group of people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paintings of Indra showed differences in the form and screen composition of works in the Goryeo Dynasty, and the early and late Joseon Dynasty. Succeeding to the preceding icons, they also showed some changes in the elements of screen composition, and there were also various transformations in the process. This painting represents Indra and total 40 dependents. The icon of Indra facing the front sitting on a chair in the center of screen, could find its origin from the painting of Indra in the Goryeo Dynasty. It shows the reflection of characteristic elements of preceding icons such as Indra’s posture and clothing, and the dragon decoration on the chair. In the composition of dependents, there are sons of Heaven with their hands together in prayer on Indra’s right and left, a son of Heaven with the image of king in the bottom of screen, a person who plays an instrument, and people holding a flag and fan in the top of screen. Like this, the composition in which the screen is filled with many dependents around Indra is the important characteristic shown in the paintings of Indra in the early Joseon Dynasty. In this painting, the originality is shown in the arrangement of ten sons of Heaven in the screen. The iconological grounds for ten sons of Heaven could be found in the scriptures and Buddhist Rituals. According to 『The Long Sermons of Agama』 and 『Daerutangyeong』 , total ten sons of Heaven always work would be helpful for understanding the flow of development and change of the paintings of Indra in the early and late Joseon Dynasty.

한국어

일본 德島(도쿠시마) 善覺寺(젠가쿠지)에 소장되어있는 <帝釋天圖>는 화기에 제작연대가 1583년으로 기록되어 있어 조선전기 군도형식의 제석천도 가운데 기년명이 남아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제석천도는 고려시대와 조선전기, 후기의 작품이 형식과 화면구성에 차이가 있고, 선행 도상을 계승하면서도 화면 구성요소에는 변화를 보이며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변용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善覺寺 소장 <帝釋天圖>는 제석천과 총 40位의 眷屬이 표현되어 있다. 화면 중앙에 정면을 향해 의자에 앉은 제석천 도상은 고려시대 제석천도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자세와 착의법, 의자에 표현된 龍頭장식 등 선행 도상의 특징적 요소들이 반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권속 구성을 살펴보면 제석천의 좌우에는 합장을 한 보살형 天子, 화면 하부에는 제왕형 天子, 악기를 연주하는 奏樂天人, 화면 상부에는 幢幡과 天扇을 들고 있는 天女와 天童이 배치되었다. 이처럼 제석 천을 중심으로 많은 권속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는 구성은 조선전기 제석천도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 제석천도의 독자성은 바로 화면에 10位 천자를 배치한 것이다. 10천자의 도상학적 근거는 경전과 불교의식집에서 파악되는데 佛說長阿含經과 大樓炭經에서는 제석천 좌우에 항상 열 명의 천자가 따라 다니며 호위한다고 하였고, 불교 의식집 勸供諸般文 「帝釋請」(1574年)에는 제석천 좌우에 천자 2位, 사방에 각각 여덟 천자가 있다고 하여 10천자 구성이 보다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따라서이 제석천도에 표현된 10천자는 경전과 의식집 텍스트를 바탕으로 의식에서 제석 천과 함께 청해지던 천자를 도상화한 것으로 판단된다. 善覺寺 소장 <帝釋天圖> 는 조선전기 제석천도에서 유일하게 제석천을 중심으로 10천자를 구성한 사례이 므로, 다른 제석천도와 차별성을 갖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또한 조선시대 제석천도에서 천자 구성이 일률적이지 않고 도상을 특정하기 모호한 측면이 있었 는데, 이 그림을 통해 제석천과 함께 청해지던 10천자 도상 규정을 명확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화기에 사찰의 大樓 좌우에 제석천도 2점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을 통해 당시 제석천도의 배치 경향과 기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제석천은 現世求福적인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인식되기도 하였지만, 이외에도 불교의식이 행해지는 도량을 淸淨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즉 일상적 의례에서는 예배대상인 제석천에게 복과 장수를 기원하고, 불교행사가 행해질 때에는 대표적인 호법신으로 사찰을 수호하는 수문 역할을 하며 다분히 그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록에 의하면 16-17세기에 제석천도를 정문 또는 대루의 좌우에 봉안한 사례가 확인되는데, 이 시기에는 제석천이 다른 호법선신보다 비중 있는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렇듯 조선시대 제석천도는 사찰 및 전각 옹호, 전각 내 佛·菩薩과 佛法을 수호하고 의식이 베풀어지는 공간을 청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善覺寺 소장 <帝釋天圖>는 현존하는 수량이 적어 시기적 특징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조선전기 제석천도에 있어서 그 가치가 실로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 작품을 통해서 조선시대 제석천도가 전기와 후기에 어떻게 전개되고 변화하는지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화면구성과 표현기법
Ⅲ. 善覺寺 소장 <帝釋天圖>의 도상
1. 선행 도상의 수용과 변용
2. 신도상의 추가와 의미
Ⅳ. 善覺寺 소장 <帝釋天圖>의 봉안처와 용도
1. 제석천 신앙과 의례
2. 봉안처와 배치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류정해 Ryu Jung-hae. 동국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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