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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시대 화엄종에 보이는 신라불교사상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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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le of Silla buddhist thoughts in the Japanese kegon school during Heian period

김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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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paper tried to discover the role of Silla buddhist thoughts in the Japanese kegon school during Heian period. At that time, the Japanese kegon school, trying to precisely understand Chinese huayan thoughts, managed to make its own huayan system, which cannot be fully explained except the role of Silla buddhist thoughts, especially Silla hwaeom. Kegonjukengi-shiiki(華嚴十玄義私記), Kegonshushogisho(華嚴種性義抄), Kegonritkyogi-shiki(華嚴立敎義私記), etc. in Heian period quote Uisang(義相)’s Beopgyedo(法界圖), Jinsung(珍崇)’s Gongmokjanggi(孔目章記) and Hwaeommundab(華嚴問答) recently indentified as Uisang’s lecture notes through Gyeondeung(見登)’s texts of Silla and also adopt Wonhyo(元曉)’s Gisinronso(起信論疏) and Yeolbanjongyo(涅槃宗要) upon considering those as Huayan texts. Regarding that adopting, the influence of Wonhyo which had spreaded to many Japanese buddhist schools even outweighing that of Fazang(法藏) before became shrinked but still remaind main texts on Huayan thoughts. At the same time, Uisang’s Beopgaedo and the texts of Uisang’s lineage occupied as important part as those of Fazang. Specifically, Hwaeommundab led the Japanese kegon school to the way of diversity. In other words, a great deal of speculation on dependent arising(緣起) and arising of the original nature(性起) and theories about becoming a buddha such as the relation between one man’s practice and everyone’s enlightenment was accepted in Heian period and transmitted through Kamakura and Edo period. In this way, various Silla buddhist texts played a certain role in the formation of Japanese own huayan thoughts which were more various than those of China or Korea and Gyeondeung of Silla was a hidden player.

한국어

본고는 헤이안시대의 일본 화엄종에서 신라불교의 역할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헤이안시대에는 「사기(私記)」가 주로 저술되면서, 일본 화엄종에서 중국 화엄교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매진하면서 독자적인 화엄학 체계를 만들어 갔다. 그런데, 일본 화엄종이 독자의 사상체계를 형성하는 데에 신라불교 특히 화엄사상의 역할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본고는 첫째, 의상 『법계도』의 역할, 둘째, 의상계통 화엄사상의 역할, 셋째, 원효저술의 역할로 나누어 검토함으로써, 헤이안시대 화엄종에 미친 신라불교의 영향을 추구하였다. 나라불교에서 원효의 영향은 법장을 넘어설 정도로 각 종파에 파급되었다. 화엄종에서는 특히, 심상(審詳)이 원효를 중시하였고, 지쿄(智憬)와 주레(壽靈)가 사상적으로 원효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헤이안 시대에 들어오면 원효의 영향력이 약화되지만, 의상과 의상학파의 진숭(珍崇)과 견등(見登)의 역할이 덧붙여진다. 특히, 견등은 의상과 진숭, 그리고 의상의 강의록인 『화엄문답』을 『향상문답』으로 소개하면서, 헤이안 화엄종이 다양하게 전개되는 원인을 마련하였다. 『십현의사기』에서는 견등이 소개한 문헌이 처음 인용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의상의 『법계도』는 3회 인용되지만, 그의 설은 법장의 설과 동등하게 중시되었다. 수전법이 그 한 예이다. 『화엄경문답』은 삼승회심설로 인해 문헌의 진위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결국은 일본 화엄종에 긍정적으로 수용되면서, 일본 화엄종에서 법장사상의 이해가 굴절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다른 각도로 보면 일본 화엄종 사상의 패턴이 풍부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화엄문답』에서만 볼 수 있는 연기와 성기에 관한 상세한 고찰, 일인수행과 전체성불의 관계 등 새로운 성불론 테마 등이 헤이안 시대에 수용됨으로써 가마쿠라시대, 에도시대를 걸쳐 그러한 사상이 활발히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신라 진숭의 『공목장기』가 「청구기」, 「신라기」의 명칭으로 인용되면서 의상의 『법계도』와 마찬가지로 법장의 사상과 동일화되고 있다. 특히, 화엄오교의 근원과 관련해서 『능가경』, 『금강삼매경』, 『석마하연론』과 관련된 『공목장기』설의 수용은 특필할만하다. 이후 일본 화엄종 가운데 이 설이 수용된 흔적은 없지만, 『석마하연론』에 대해서는 타종파와 관련해서도 주목할만하다. 이렇게 의상과 의상학파의 문헌이 일본에 들어와 인용된 것은 일본에서 견등의 『화엄일승성불묘의』가 저술되었기 때문인데, 그 점으로부터 볼 때 견등은 헤이안불교 다양화의 공로자이다. 한편, 원효의 역할이 줄지만, 『종성의초』나 『입교의사기』에서는 일천제와 이승성불의 문제, 일음과 원음의 동이에 관련해서 가장 유력한 증거로서 중요시되었다. 이렇게 헤이안시대에는 원효 외에 의상과 의상학파의 신라불교사상이 새로이 수용되었다. 특히, 『화엄경문답』의 수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신라불교 문헌은 일본 화엄종이 중국이나 한국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일본 독자의 화엄사상을 형성하는데 일정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목차

요약문
Ⅰ. 머리말
Ⅱ. 신라불교의 역할에 대해서
1. 의상 『법계도』의 역할
2. 의상계통 화엄사상의 역할
Ⅲ. 원효 저술의 역할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김천학 Kim, Cheonhak.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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