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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화혼양재’의 국가적 실천양상 - 전근대・근대의 ‘고용외국인’(お雇い外国人)의 활동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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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tional Practice of “Wakonyosai” in Japan : Focusing on Activities of Pre-modern and Modern “hired foreigners”

임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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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In late 19th century Japan, under the banner of “Wakonyosai,” which emerged as a slogan, the attitude to adhere “Wakon” (Japanese Spirit) continued, while the practice of “yosai” (Western Learning) to accept Western science and technology continued in fields of industry and military. After the Meiji Restoration, it was prioritized above all to achieve the national tasks of FukokuKyohei (rich country, strong army), and “ShokusanKogyou (encouragement of new industry)”. Foreign employment was the preferred method of introducing Western technology, that is yosai. However, foreign employment did not begin after the Meiji Restoration. From the late Edo period to the Meiji period, many foreigners came to Japan, and the majority of them were invited and hired by the new government of Meiji from Europe or America, which they called “hired foreigners” and helped build Meiji Japan as a modern state in many ways. If one wants to review Japan's modernization, one must look at the achievements or roles of these “hired foreigners”. In other words, the historic existence of the “hired foreigners” shows one aspect of the important character of the Meiji Restoration and Japan's modernization. From the end of the Edo period to the end of the Meiji period, when the country was under external pressure, this article examines the activities and lives of “hired foreigners” to understand one aspect of Japan's modernization process while also taking a look at Japan's way of embracing foreign culture.

한국어

19세기 후반의 일본에서는, 슬로건으로 등장한 ‘화혼양재’의 기치 아래, 완강하게 ‘화혼’을 보지하고자 하는 자세가 계속되는 한편으로, 산업과 군비의 측면에서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양재’의 실천이 계속되었고,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부국강병’과 ‘식산흥 업’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우선시된다. 양재, 즉 서양기술을 도입하기 위하여 우선 선택한 방법이 외국인의 고용이었다. 하지만 외국인의 고용이 메이지유신 이후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에도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 에 걸쳐 많은 외국인들이 일본으로 오는데, 대다수가 막부나 메이지 신정부에 의해 구미 제 국으로부터 초빙되어 고용되었는데, 이들을 ‘고용외국인(お雇い外国人)’이라 불렀고, 이들이 다방면으로 활동하면서 근대국가로서의 메이지 일본의 건설을 원조했다. 일본의 근대화를 검토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 ‘고용외국인’의 업적이나 역할을 살펴볼 필 요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 ‘고용외국인’이라는 역사적인 존재를 통해 메이지유신이나 일본 의 근대화가 지닌 중요한 성격의 일면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외압에 시달리던 에도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국가를 건설해 가던 당시까지, ‘고용외국인’들의 활동과 생활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일본의 근대화과정의 일면을 파악함과 동시에, 외래문화를 수용하는 일본의 방식에 대해서도 살펴볼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목차

Abstract
1. 서론
2. 에도시대 말기의 선구적 ‘고용외국인’
2.1. ‘나가사키 해군전습소’(長崎海軍伝習所)
2.2. 영학(英学) : ‘나가사키 영어전습소’(長崎英語伝習所)와 ‘이인관’(異人館)
2.3. 프랑스학(仏学) : 요코스카(横須賀) 제철소와 ‘불어학전습소’(仏語学伝習所)
3. 근대국가 메이지 정부의 ‘고용외국인’
3.1. 메이지 시대의 ‘고용외국인’의 추이
3.2. ‘고용외국인’의 분야별 활동과 공적
4. 결론: ‘고용외국인’이 일본근대화에 끼친 영향
<참고문헌>
<국문요지>

저자정보

  • 임경택 Yim Kyung Taek.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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