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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톤베리의 아서 왕 : 진실과 허구, 과거와 현재 사이

원문정보

King Arthur in Glastonbury : Between Truth and Fiction, Then and Now

윤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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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A small rural town in Somerset, England, Glastonbury has gained its reputation as a major Arthurian site within Britain’s mythical geography since the late twelfth century, and it still enjoys the reputation nowadays. This paper aims to follow and investigate how Glastonbury earned such title, sharpening focus on the history of benedictine Glanstonbury Abbey. The crux of this paper is that the connection between King Arthur and Glastonbury is the consequence of the abbey’s deliberate, persistent, and extended investments as ways to cope with its multiple crises in post Norman Conquest period, both financial and ecclesiastical, that threatened its time-honored existence and legacy as one of the oldest Christian monasteries in England and, arguably, in Europe. The undertaking began in the onset of the twelfth century by commissioning noted historians, including William of Malmesbury and Caradoc of Llancarfan, to produce chronicles that would embellish the monastery and its founding fathers and legends. By the late twelfth and early thirteenth centuries when Gerald of Wales was working on his two chronicles, the abbey had King Arthur as its most famous and generous benefactor whose body it had just recently exhumed in its own ground, and it also gained another name Avalon, a Celtic otherworldly site to which the mortally wounded Arthur was claimed to have been carried off after the Battle of Camlan. Glastonbury’s legacy as the most important Arthurian site in England appears to have flourished, as the mid-15th century Thomas Malory and the late twentieth-century Marion Z. Bradley testify, though it sometimes has done so in unorthodox, ground-breaking twists.

한국어

영국 남서쪽 서머셋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인 글래스톤베리는 12세기 후반 부터 오늘날까지 영국에서 가장 신화적인 장소 중 한 곳으로 알려져 왔다. 본 논문의 목적은 어떤 연유와 과정을 거쳐서 아서 왕 전설이 글래스톤베리를 대 표하는 신화 담론이 되었는가를 글래스톤베리 수도원 역사를 추적하면서 살펴 본다. 아서 왕이 글래스톤베리 수도원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 것은 12세기 초반 부터 14세기 중엽까지 그곳 수도사들이 수도원의 전통과 명성, 그리고 독립성 을 지키려고 쏟은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몰멜 스베리의 윌리암, 란카판의 카라독, 웨일즈의 제랄드와 같은 유명 연대기 작가 를 고용하거나 다머햄의 아담, 글래스톤베리의 존과 같은 내부 인력을 동원해서 수도원을 옹호할 수 있는 담론을 문자의 힘을 빌려 계속 재생산하고, 다른 한편 으로는 1191년에 있었던 아서 왕 유해 발굴 사건이 예시하듯이 필요한 경우 유 적(물)을 새로 만들어내는 일도 감행했다. 글래스톤베리 수도원이 그렇게 만든 아서 왕 전설은 글래스톤베리를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신화적 장소로 만들어 주었고, 그것은 또한 일종의 유산으로서 중세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신화나 전설이 그러하듯이, 글래스톤베리의 아서 왕 이야기 도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적, 문화적 요구와 믿음에 맞게 적응하고 진화해 온 것 으로 보인다. 그 예로 15세기 중엽 토머스 말로리와 20세기 후반 마리온 짐머 브래들리가 그리는 글래스톤베리와 아서 왕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본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글래스톤베리 수도원과 아서 왕 전설
Ⅲ. 아서 왕과 헨리 2세: 웨일즈의 제랄드
Ⅳ. 아서 왕과 아리마태아의 요셉: 몰멜스베리의 윌리암
Ⅴ. 아서 왕과 아발론/글래스톤베리: 몬머스의 제프리와 란카판의 카라독
Ⅵ. 나가는 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저자정보

  • 윤주옥 Ju Ok YOON.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전문연구원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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