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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 <鹿鳴>의 수용 양상에 대하여 : 조선시대 한문산문과 실록류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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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arding the acceptance pattern of The Book of Odes’s <Nogmyeong> : Focusing on Chinese prose and Silloks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이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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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I would like to find out the effect of The Book of Odes( 『詩經』) on our country as a way to look at specific examples of how the individual works contained in 『The Book of Odes』 were accepted and utilized in our literary world. This paper is the second attempt. is the first work of 「Soa(小雅)」 which is one of the ‘Four beginnings[四始]’ in 『The Book of Odes』’s . This poem, which includes the content of a host hosting a banquet, is already recorded at the official banquet during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And if you look at several 『Books of Rite[禮記]』, such as 『Yegiboju(禮記補註)』, compiled in Korea, there is a record that was used to entertain banqueters. was the most frequently cited in Pyojeon(表箋) of prose style, and is usually used to emphasize that ‘This banquet is a beautiful feast like ’ or was used as a humble word that ‘I am not enough to be a beautiful banquet guest or servant.’ In Preface & Epilogue[序跋], there were many metaphors for passing the Examination of Country Magistrates[鄕試] or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s [大科] as . And mentioned in the dialogue between the king and the servant is mostly reflect it’s subject such as ‘The harmony between the host and the guest’, or a step further from here, it can be seen that it is used to mean ‘The unity of king and servant.’

한국어

필자는 『시경』이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을 『시경』에 수록된 개별 작품들을 우리 문단에서 어떻게 수용・활용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는 방법으로 찾고자 하는 데, 이 논문은 그 두 번째 시도에 해당된다. <鹿鳴>은 『시경』 <大序>에서 ‘四始’ 중 하나로 거론 된 「小雅」의 첫 번째 작품 이다. 주인이 손님을 맞이해서 연회를 베푸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시는 춘추전국시 대에 이미 공식연회에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禮記補註』 등 여러 『禮記』류 서적을 보면 <녹명>이 손님을 대접할 때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 아 있다. <녹명>은 산문 문체 중 表箋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었는데, 대체로 ‘이번 연회는 <녹명>과 같이 아름다운 잔치’라는 점을 강조할 때 사용되거나, 자신이 <녹명>시와 같은 아름다운 잔치의 손님이나 신하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겸사로 사용되었다. 序 跋에서는 대체로 <녹명>을 가지고 鄕試나 대과에 급제한 것을 비유한 내용들이 많 았는데, 특히 정조는 <녹명>의 구절인 ‘我有嘉賓’을 새긴 은 술잔을 성균관 유생들 에게 하사하고 지은 <太學恩杯詩序>에서 그들이 ‘아름다운 손님[嘉賓]’으로 성장해 서 나라에 큰 보탬이 되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조선은 태종 초기부터 고려 말의 음악에서 벗어나 바른 음악을 사용하자는 취지 에서 『시경』 <녹명>등을 공식연회에서 사용해왔고, 세종조에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만든 우리의 노래를 연회에 사용하기도 했다. 중종 무렵에는 연회 음 악이 상당부분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조대에 와서는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된 것으로 보인다. <녹명>과 관련된 실록류의 이러한 흐름 이외에도, <녹명>을 언급하고 있는 46건 의 실록류 기록 중에 임금이 참여한 朝講이나 晝講에서 <녹명>의 의미가 거론된 것 이 11차례에 이르고, 이외에 군신 간의 대화에서 언급된 <녹명>도 대부분 <녹명>이 담고 있는 주제인 ‘주인과 손님의 調和’나,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君臣의 화 합’을 이루어야 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목차

【논문요약】
Ⅰ. 들어가는 말
Ⅱ. 산문에서의 용례: ‘아름다운 잔치’나 ‘과거합격’을 비유
Ⅲ. 실록류에서의 용례: ‘正樂에 대한 의지’ 표명과 ‘君臣 화합’의 비유
Ⅳ. 나오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이상봉 Lee Sang-bong. 부산대 한문학과 BK21+Post-Doc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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