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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造泡屬寺의 운영 실태 - 坡州三陵의 美黃寺 사례를 중심으로 -

원문정보

Management of Joposoksa Temple(造泡屬寺) in the late Joseon Dynasty - Focusing on the case of Mihwangsa Temple in Paju Three Tombs -

조선후기 조포속사의 운영 실태 - 파주삼릉의 미황사 사례를 중심으로 -

탁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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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understand the management of the Joposoksa Temple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rough the case of the Yeongam Mihwangsa Temple in the Joseon dynasty in Paju Three Tombs. In the Joseon Dynasty, there were temples in most Royal Tombs. Various temples called Temples belong to Royal Tombs(陵寢寺), Royal Tombs’ Temple(능사), Palace for Memorial Ceremony(齋宮), Joposa Temple (造泡寺), Joposoksa Temple(造泡屬寺) were installed. Among them, the Joposoksa Temple played the role of financially supporting the Joposa Temple. The Joposoksa Temple in the late Joseon Dynasty can be classified into three types. First, one temple is in charge of fatigue in several royal tombs at the same time. Second, this is the case where a small temple near the royal tomb was chosen as the Joposa Temple. Third, a temple designated as the Joposa Temple played various roles in addition to the Jopo charge. In this way, when it was difficult for one or two Joposa Temples to play the role of fatigue at Royal Tomb, the Royal Court installed Joposoksa Temple to relieve the economic burden of Joposa Temple. In the early 19th century, when all the Joposa Temples in Paju Three Tombs were ruined, the Royal Court designated Bogwangsa Temple in Paju as the Joposa Temple in Paju Three Tombs, and soon made Yeongam Mihwangsa Temple as the Joposoksa Temple. The Mihwangsa Temple was to pay 200 Nyangs of tax annually, and instead was exempted from all 20 or more fatigue duties. Of the 200 Nyang paid to the Mihwangsa Temple, 100 Nyang were paid for the fatigue cost of Bogwangsa Temple, but the remaining 100 Nyang were spent for the management of Paju Three Tombs. The Joposoksa Temple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installed for the financial aid of the temple in charge of the heavy charge among the royal tombs. These temples were often located remotely from the royal tombs like the Mihwangsa Temple, and most of them were in charge of financial and material assistance without a direct charge. In exchange for the financial assistance of the Joposa Temple, the Joposoksa Temple was able to be exempted from the enormous fatigue duty that it had previously been in charge of.

한국어

본고는 조선후기 파주삼릉의 조포속사인 영암 미황사의 사례를 통해 조선후기 조포속 사의 운영 실태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陵園에는 사찰이 배치되었다. 능침사, 능사, 재궁, 조포사, 조포속 사로 불리던 다양한 사찰들이 설치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조포속사는 조포사를 경제적으 로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후기 조포속사는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한 곳의 사찰이 여러 왕릉의 조포 역을 동시에 담당할 경우이다. 둘째 왕릉 인근의 영세한 사찰을 조포사로 삼은 경우이다. 셋째 조포사로 지정된 사찰이 조포 역 이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 경우이다. 이처럼 1~2곳의 조포사가 능원묘의 조포 역을 담당하기 어려울 때 조정에서는 조포속사를 설치해 조포사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었다. 19세기 초 파주삼릉의 조포사가 모두 폐사하자, 조정에서는 파주 보광사를 파주삼릉 의 조포사로 지정하고 곧이어 영암 미황사를 조포속사로 삼았다. 미황사는 매년 200냥 의 세액을 납부하게 되었고, 대신 기존에 수행하던 20가지 이상의 잡역을 모두 면제를 받았다. 미황사에서 납부한 200냥 가운데 100냥은 보광사의 조포 비용으로 지급되었지 만, 나머지 100냥은 파주삼릉의 운영 비용으로 소요되었다. 조선후기의 조포속사는 왕릉 조포사 중에서도 과중한 역을 담당하는 사찰의 경제적 보조를 위해 설치되었다. 이들 사찰은 미황사와 같이 왕릉에서 원거리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으며, 직접적인 역 없이 금전적인 보조와 香炭 역을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조포사의 경제적 보조를 담당하는 대가로 조포속사는 기존에 담당하던 막대한 잡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조선후기 조포속사의 설치 배경과 현황
1. 조포속사의 설치 배경
2. 조포속사의 설치 현황
Ⅲ. 파주삼릉의 조포속사 설치 및 운영
1. 파주삼릉의 조포속사 설치 과정
2. 조포속사 지정과 운영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탁효정 Tak, Hyo-Jeong.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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