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aims to reveal three points as belows: First, the influence of the March First Movement on Japanese colonial rule; Second, the change in Japanese ruler’s perception of Korean national movement; Finally, the meaning of “politics” in colonial Korea. Based on the above interests, this paper put the focus on Abe Mitsuie, an adviser to Governor-General Saitō Makoto. He proposed related policy how to rule Korean Peninsular in contact with Korean nationalists. Through Abe’s perception on the Korean national movement, this paper examined how the ruler’s perception changed after the March First Movement. Abe’s theory of “win-the-people’s-heart” (jinshin shūran ron) was based on a sense of crisis that imperial Japan was endangered by the March First movement. To solve this problem, Abe suggested that Japan should replace the leader of the movement from “pro-Japanese” to “nationalists”. However, there was a proviso clause: The “national movement” should not violate the sovereignty of imperial Japan. In 1925, Abe’s perception of the Korean national movement showed a slightly different developmen. Instead of the educational and economic-centric movement, he came to aim for a “political movement”, especially a “self-governing movement”. This paper tries to explain why Abe has come to seek a self-governing movement and clarify the boundaries of a “legitimate political space” dealing with Abe’s discourse on the “right-handed organizations”. After the March First Movement, Japanese rulers had an ambivalent task regarding Korean national movement, that is “suppression” or “conciliation”. The criteria to deciding whether to suppress or conciliate depend on whether it violates “legitimacy = sovereignty” of imperial Japan. This criterion was also emphasized when the movement expanded into a political movement. In other words, if the movement was compatible in the “legitimate political space”, “compromising or uncompromising” was only a secondary issue.
한국어
본고의 관심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3.1운동이 일본의 식민통치 담론에 미친 영향, 둘째 특히 조선의 민족운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 셋째 식민지조선에서 ‘정치’의 의미이다. 이 세 가지 관심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으로서 아베 미쓰이에(阿部充家)에 주목했다. 아베는 3.1운동 이후 총독 사이트의 비공식 브레인으로 발탁된 인물로, 조선의 민족운동 세력과 연락을 취하면서 정책 제언을 했다. 이러한 아베의 인식을 통해 3.1운동 이후 조선의 민족운동에 대한 통치자의 인식을 살펴보았다. 아베의 ‘인심수람’(人心收攬)론은 3.1운동으로 흔들리는 제국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논의였다. 이를 위해 아베는 운동의 주도세력을 ‘친일이 아니라 민족주의’ 세력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민심에 호소력을 갖는 세력이 중심이 되어야 비로소 운동도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우의 운동이란 ‘제국의 주권성에 저촉되지 않는=합법적인 운동’을 의미했다. 조선의 민족운동에 대한 아베의 인식은 1925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전개를 보이게 된다. 교육이나 경제 중심의 문화운동을 넘어 ‘자치’라는 형태의 ‘정치운동’을 의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아베를 자치운동으로 이끌었던 계기를 살피는 동시에 ‘우경단체’라는 말의 쓰임새를 통해 ‘합법적 정치공간’의 경계를 밝혔다. 3.1운동 이후 제국의 통치자들은 민족운동을 탄압하는 동시에 회유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때 ‘탄압’과 ‘회유’를 가르는 기준은 바로 ‘합법성=주권성 저촉 여부’에 있었다. 운동이 정치적인 영역으로 확장되었을 때도 중시된 것은 이 기준이었다. 즉 그것이 ‘합법적 정치공간’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타협적인지 비타협적인지’는 부차적 문제에 불과했다. 이처럼 본고에서는 아베를 실마리로 민족운동에 대한 통치자의 인식에서 재고되어야 할 점을 확인했다.
일본어
本稿の関心は次の三点にある。第一に、3.1運動が帝国日本の植民統治論に及ぼした影響、第二に、とくに民族運動に対する認識の変化、第三に、植民地朝鮮における「政治」の意味である。 上記の関心を満たしてくれる対象として、阿部充家に注目した。阿部は、3.1運動後に総督斎藤の非公式ブレインとして抜擢された人物で、朝鮮の運動勢力と連絡を取りつつ政策提言を行った。こうした阿部の認識を通じて、3.1運動以降、朝鮮の民族運動に対する統治者の認識がどのように展開されたのかを考察した。 阿部の「人心收攬」論は、3.1運動の衝撃に揺らぐ帝国への危機感を土台とした議論であった。このために阿部は斎藤に運動の主導者を「親日ではなく民族主義」勢力へ転換する必要があると主張した。民心から支持を得られる勢力であってはじめて運動も効果をもつと考えたためである。だが、この場合の運動とは、「帝国の主権性に抵触しない=合法的な運動」を意味した。 朝鮮の民族運動に対する阿部の認識は、1925年を分岐点に新たな展開を見せる。教育や経済中心の文化運動を越えて、「自治」という「政治運動」を意図す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本稿では、阿部を自治運動に突き動かした契機を考察すると同時に、「右傾団体」という語を通じて「合法的政治空間」の境界を明らかにした。 3.1運動以降、帝国の統治者は朝鮮の民族運動を「弾圧」する一方で「懐柔」も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二重課題を抱えていた。その際に、弾圧と懐柔を隔てる基準は「合法性=主権性への抵触如何」にあった。民族運動が政治運動に拡大した際にも、重視されたのはこの基準であった。すなわち、それが「合法的な政治空間」に含まれるならば、「妥協的か非妥協的か」は二次的な問題に過ぎなかった。このように、本稿では阿部を手がかりに、民族運動に対する統治者の認識に再考の余地があることを確認した。
목차
Ⅰ. 머리말
Ⅱ. 인심수람과 전환론
1. 3.1운동과 인심수람론
2. 친일에서 민족으로의 전환
Ⅲ. 운경단체와 합법성의 경계
1. 운동의 정치화와 아베
2. 조선행의 계기들
3. 우경단체의 안과 밖
Ⅳ. 맺음말
<참고문헌>
要旨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