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영어
Ryu In Seok is a leader of the Righteous Armies at the late Joseon Dynasty. He had carried out Righteous army activities in the Chungbuk area since the murder of Empress Myeongseong. He also exiled himself to the Maritime Province of Russia in order to reclaim the sovereignty of a nation after Japan-Korea Treaty of 1905 (Ulsa Treaty). This article reserched on the title of Ryu In Seok after the murder of Empress Myeongseong. It is a controversial issue even among Righteous Army researchers. There is no dispute among them regarding the title of Ryu In-seok after Ulsa treaty. They all call him "Commander in Chief of 13-province Righteous Armies." Righteous Army activists and enlightenment activists had him as the Commander in Chief of all Righteous Armies at that time. There have been various arguments for the title of Rye In Seok after the murder of Empress Myseongseong. 'Leader of the Righteous Armies, Rye In Seok' 'Yeongwol Righteous Armies leader,' 'Jecheon Righteous Armies leader,' and 'Leader of Hojwa(湖左) Righteous Armies,' and so on. However, this article insists that it is right to call him as 'Leader of Hojwa Righteous Armies.' The reasons for this are as follows. Firstly, Ryu In Seok called himself 'Leader of Hojwa Righteous Armies.' Secondly, those who had been engaged with Ryu In Seok called him as the same. Thirdly, the documents that King Kojong conferred to Ryu In Seok refers to 'Hojwa Righteous Armies.' Lastly, the main activity areas of his were mostly in Chungbuk area. In conclusion, it would be right to call Ryu In Seok as the 'Commander in Chief of 13-province Righteous Armies' in the sense that he was in charge of Righteous Army activities at the end of the Korean Empire. However, after the murder of Empress Myeongseong, he should be called 'Leader of Hojwa Righteous Armies.’
한국어
류인석은 구한말 항일의병운동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을미사변 이 후에 그는 충북-강원 지역을 무대로 수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충주성을 점령 할 정도로 군세를 떨치며 강력한 항일활동을 전개했다. 을사늑약 이후에 그는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여 계몽운동자들과 연대하여 국권회복을 목표로 의병 활동을 벌였다. 이 논문은 의병 연구자들 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전기의병기 류인석 의병장의 명칭에 관한 문제를 다룬 것이다. 현재 후기의병기 류인석 의병장의 명칭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는 편이다. 즉 의병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류인 석에게 한말 의병의 총책임자라는 의미가 담긴 ‘13도의군 도총재’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류인석이 연해주에서 의병세력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다가 13도의군 도총재에 추대되었기 때문이다. 전기의병기 류인석 의병장의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나와 있다. 첫째, 한말 의병운동이 의병장 중심으로 전개된 사실을 감안하여 류인석 의병장이라 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 둘째, 류인석이 영월에서 봉기한 사실을 감안하여 영월 의병장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 셋째, 류인석이 제천을 주무대로 활동하였음 을 감안하여 제천의병장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 넷째, 류인석이 자신을 호좌의병장으로 불렀고, 자신이 거느린 군사들을 호좌의병으로 불렀음을 감안 하여 호좌의병장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이상의 여러 가지 주장들에 대해서, 필자는 전기의병기 류인석 의병장의 명칭 을 ‘호좌의병장’이라고 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로는 ① 1896년 1월 이후 류인석 의병장이 일관되게 자신이 거느린 부대를 ‘호좌의병,’ 자신을 ‘호좌 의병장’이라고 불렀고, ② 김하락 의병장이나 류인석 의병장과 서한을 주고받 은 인사들이 류인석의병을 호좌의병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③ 1895년 12월 15일자 고종 명의로 각지 의병장에게 하사한 밀지에 호서(호좌)지방에서 봉기 한 의병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④ 의병 명칭을 부여할 때 중요 고려 사항인 창의지 문제에서 류인석의병의 창의지인 영월이 당시 행정구역상으로 는 강원도였으나 문화권ㆍ생활권으로는 호좌지역에 속해 있던 지역이라고 말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는 점 등등을 두루 감안하면, 을미 류인석 의병장의 명칭 을 ‘호좌의병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 결론적으로 류인석의 의병장으로서의 명칭에 대해서는 정부와 각급 사회단체 가 주최하는 기념식과 류인석 관련 홍보ㆍ선양 책자에서는 한말 의병운동 당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한 류인석 의병장의 애국활동을 총괄하는 명칭으로서 ‘13도 의군 도총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만 전기의병기 류인석 의병장의 명칭에 대해서는 ‘호좌의병장’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차
1. 머리말
2. 류인석의 의병장 취임 이전 활동
3. 류인석 의병장의 명칭에 대한 검토
4. 맺음말
ABSTRAC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