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A Study on the Traditional coming-of-age ceremony(冠禮) of Haminjae(含忍齋) Jeong Guk-chae(鄭國采)
초록
영어
Haminjae Jeong Guk-chae was a Noron-leaned(老論係) Confucian scholar whose main activity was done out of office in the early 19th Century. He was a Yehak (禮學, study on manners from Confucian tradition) scholar who wrote Yehak books such as SaryeChalyo(四禮撮要) and GyeonryeGangseol(經禮講說) along with Haminjae's Posthumous Work(含忍齋遺稿). He learned lots of academic theories from then renowned Yehak scholar Gyeongho Lee Ui-jo(李宜朝). Jongjahwanse-Gagwanhunsa(從子煥世加冠訓辭) included at Haminjae's Posthumous Work was a unique writing about studies on traditional coming-of-age ceremony and must be materials that could fathom the world of Yehak built by Jeong Guk-chae. This writing made after he performed the coming of age ceremony for his nephew Hwanse followed the form of instructions. Therefore, this writing took the different form from the manuals for ceremonies suggested by Yegyeong(禮經) and Yeseo(禮書). For example, unlike Jujagarye(朱子家禮) that suggested roughly 17 clauses, he paid attention to Clause 8, 9 and concentrated on re-interpreting the system of meaning contained there. The study found that while establishing Jujagarye as a basic text, Jeong Guk-chae took the stance oriented towards old practices by citing Uirye(儀禮) and Yegi(禮記). Furthermore, he conducted a series of creative reinterpretation as to go beyond the contents of Yeseo and Yegyeong. This suggests that his world of Yehak explored and arrived at a profound level.
한국어
경상우도에 연고를 둔 함인재 정국채는 19세기 초반을 전후로 한 시기를 활동기 로 삼았던 노론 계열의 재야 유학자다. 정국채는 문집인 함인재유고 외에도, 사 례촬요와 경례강설 및 농서찬요등과 같이 다양한 저서를 남긴 학자이지만, 문 집을 제외한 주요 저술들이 일실된 상태다. 더욱이 함인재유고도 지금까지 학계 의 공적 논의의 장에 소개되지 않았던 까닭에, 정국채의 생애며 학문세계에 관한 연 구 성과는 전무한 실정이다. 그리하여 금번 논의를 통해서 정국채가 구축한 예학세계의 특성을 가늠할 만한 관례 예학을 대상으로 하여 우선적인 연구를 시도하였다. 정국채의 학자적 정체성 은 예학자로 규정할 수 있는데, 현전하는 「종자환세가관훈사」는 예학 방면에 관한 유일한 자료에 해당한다. 정국채가 조카의 관례를 치른 뒤에 작성한 「종자환세가관훈사」의 경우, 본디 자사(字辭)에 상응하는 양식의 글로 분류할 수 있다. 때문에 이 글은 정국채가 참조한 예경ㆍ예서들인 의례ㆍ예기ㆍ주자가례 등에서 제시 한 의식 메뉴얼과는 성격 자체가 판이한 양상을 취하고 있다. 예컨대 정국채는 약 17 조목에 달하는 주자가례의 절목과는 달리, 8, 9항목에 주목하면서 그 안에 내재된 일련의 의미 체계들을 해명해 내는 문제에 주력했던 것이다. 또한 이 글과 짝을 이 루는 칠언율시인 「종자환세가관일제차시지」의 창작을 통해서 「종자환세가관훈사」 의 내용을 정리하고 보완한 점도 주목된다. 한편 정국채의 경우 주자가례를 기본 텍스트로 설정하는 가운데, 의례와 예기에서 제시한 설명을 원용하는 식의 고례 지향적 태도를 보여준 점도 훈사의 주요한 특징을 형성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국채는 열거한 예서ㆍ예경의 내용을 초극한 수준에서 일련의 독창적인 재해석을 수행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정황들은 관례 예학으로 대변되는 정국채의 예학세계가 상당히 심오한 경지를 개척하였을 것 임을 은연중 시사해 준다. 다만, 정국채의 경우 노론계 예학의 한 축을 형성했던 경 호 이의조에게 사사(師事)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그의 예학이 연원했던 학적 계보를 규명하지는 못한 상태다.
목차
I. 드는 말
II. 학문적 규모와 예학세계
III. 「종자환세가관훈사(從子煥世加冠訓辭)」와 관례 예학
1. 「종자환세가관훈사」의 작성 경위와 특징
2. 함인재 관례 예학의 두 국면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