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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 오키나와 독립론의 한 사례 -키유나 쓰구마사의 삶과 활동

원문정보

A Case Study of Okinawan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Cold-War Period – Focusing on Kiyuna Tsugumasa’s Life and Political Activity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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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Kiyuna Tsugumasa(Chinese name, Tsai Chang) was a politician who spent all his life on Okinawan independence movement. His political activity can be distinguished by extensive worldwide activity within large range of personal histories. His anti-Japan, anti-communism, and pro-Chinese independence movement was supported by Chiang Kai-shek and Syngman Rhee. Also, Kiyuna tried to make a joint activity with Syngman Rhee who was against Okinawa's 'return' to Japan. Moreover, it is confirmed that Kiyuna was involved with Park Chung-hee’s anti-Japan and anti-communism activities. However, popularity of Kiyuna's idea was temporary during cold-war and was not popular inside Okinawa. His theory became less realistic in new cold-war. However, his parallel-revolution idea of Japan and Okinawa carries effectiveness. He lamented over psychological slave thoughts of Okinawans who aimed ‘returen’ to Japan and insisted to awaken independence thoughts. This can be seen as a demand to create counter-culture that is beyond the cultural power of Japan, which is secured in the imperial empire and post-empire stages. After Kiyuna’s death, Okinawa has been attempting to develop independency within ruminating the 'historical lesson'. In the new periodic conditions, there can be expectations that Kiyuna's dream may become reality in new ways.

한국어

키유나 쓰구마사(중국명 차이쨩)가 평생을 바쳤던 류큐 독립운동은 무엇보다도 광범위한 국제적 활동의 폭과 경력으로 특징지워진다. 하와이 출생, 중국 연원의 가계, 어린 시절부터 오키나와와 동남아와 사이판 등을 오갔고 중국대륙과 대만에서 정치활동을 하며 동아시아 각국 지도자와 교류했던 그의 다채로운 이력과 폭넓은 활동범위를 넘어설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반일, 반공, 친중적 독립론은 중화민국 장제스 정부 및 한국 이승만 정부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1950년대에는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에 반대하고 류큐 독립을 지향하는 이승만 정부와 연대활동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이후 박정희 정부 시기에도 반일, 반공활동에서 일정한 연계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키유나의 류큐독립론은 오키나와 내에서는 큰 지지를 얻지는 못했고 국제적으로도 냉전기의 일시적인 현상에 그쳤다. 탈냉전 후, 또 최근의 신냉전기 단계에서는 현실성이 더 약화되었다. 독립론은 아직 소수의 견해이다. 그럼에도 그의 일본 및 오키나와의 병행변혁의 사상은 유효성을 지닌다. 그는 일본 ‘복귀’를 지향한 오키나와인들의 정신적 노예상태에 대해 한탄하고 주체적 각성을 촉구하였다. 이는 제국 및 포스트제국의 단계에서도 관철되고 있는 일본의 문화권력을 넘어서는 대항적 문화를 형성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의 사후 오키나와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되새기면서, 자율성을 강화하려는 각종 시도를 전개해왔다. 새로운 시대적 여건 속에서 키유나의 꿈은 새로운 방식으로 실현되리라 기대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어

喜友名嗣正(蔡璋)が生涯を捧げた琉球独立運動は、幅広い国際活動と多様な経歴が特徴的である。ハワイ出生、中国起源の久米三十六姓の子孫、幼いときから沖縄、東南アジア、サイパンなどを往来し、中国大陸と台湾で政治活動を行い、東アジア各国の指導者と交流した喜友名の多彩な経歴と幅広い活動範囲を越える人は多くないはずである。喜友名の反日、反共、親中的な特立論は、中華民国莊介石政府および韓国李承晩政府の支持を受けることもできた。1950年代には、日本への復帰反対、琉球独立を目指して李承晩政府と連帯活動も試みた。1960年代の朴正熙政府時期にも反日、反共産活動の面で一定の連携があったことが確認される。 しかし、喜友名の琉球独立論は沖縄では大きい支持を得られず、国際的にも冷戦期の一時的な現象にすぎなかった。脱冷戦後、また最近の新冷戦期の段階に至っては、その現実性はより弱まった。特立論者も依然として少数派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喜友名の日本および沖縄変革思想は有意義であると考えられる。彼は、日本「復帰」を求めた沖縄の人々の精神的奴隷状態を嘆き、主体の覚醒を促した。彼の主張は、帝国およびポスト帝国の段階においても続いている日本の文化権力をから脱却するカウンターカルチャーの形成をもとめたものであるとも言える。喜友名の死後、沖縄の人々は「歴史の教訓」を忘れず、常に反芻しながら、自立性を高めるための様々な努力をしてきた。新たな時代の情況の中で、喜友名の琉球独立の夢は新たな方式で実現できるかもしれない。

목차

1. 들어가며
2. 기존 연구
3. 키유나 쓰구마사의 삶과 활동
4. 동아시아 차원의 국제적 활동과 한국과의 관련
5. 키유나의 독립론의 특징
6. 나오며
reference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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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 이지원 Chi-Won, LEE. 한림대 일본학과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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