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Jeong Yakyong’s Understanding of Buddhism and Tea Culture
초록
영어
Dasan Jeong Yakyong, a representative intellectual in the new era of quest, was first contacted by Catholicism then exiled to Gangjin. He accomplished many academic achievements. Dasan was somewhat related to Buddhism during the Gangjin exile, having ties with several monks such as Hyejang and Ui Soon centered on the Baeknyeonsa and the Daedunsa. He tried to teach Confucian scriptures to the monks. He led the compilation of the history of Daedunsa and Baeknyunsa, which were the centers of Buddhism at that time. And he wrote the Daedong-seongyo-go, describing early Korean Buddhist history. Despite many interactions with monks, the basic Buddhist view was as negative as previous Confucian scholars had been. Dasan strongly pointed out the Buddhist dissolution in discussing the measures that had been offered to Jeongjo. He did not recognize the monks whom he interacted with, but he did not evaluate the Buddhist study or Seon practice of the monks. The attitude is quite different from the intention of the intellectual who sought a new thought. Dasan gained much knowledge about tea from books from China. He considered tea as a medicinal rather than a favorite food. It is known that Dasan taught tea to Hyejang, Uisoon, etc. But he urged Hyejang to send tea a month after their first meeting. It means that Hyejang had already manufactured and propagated tea before meeting Dasan. It is clear that Dasan played a major role in the rise of tea culture in late Joseon. This role and the path of acquiring tea knowledge and manufacturing tea should be distinguished.
한국어
새로운 모색의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인 다산은 일찍이 천주교에 접했다가 강진에 귀양 가서 이후 많은 학문적 성과를 이루어냈다. 다산은 불교와 다소 관련을 갖기도 했으나 특히 강진 유배기에 백련사와 대둔사를 중심으로 혜장과 의순 등 여러 승려들과 교유를 가지며 승려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치고자 노력했다. 당시 불교의 중심지였던 대 둔사와 백련사의 사지 편찬을 지도했고, 대동선교고를 편찬하여 한국 초기 불교사를 서술하기도 했다. 승려들과 많은 교류를 했음에도 다산의 기본적인 불교 인식은 이전의 유학자들이 그 랬던 것처럼 매우 부정적인 것이었다. 다산은 조정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정조에게 개진 했던 대책 논의에서 강하게 불교 폐단을 지적했다. 그는 그가 교류한 승려들도 자질이 낮다고 보고 승려들의 경전 공부나 선 수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유를 모색했던 지식인의 지향과는 사뭇 다른 태도이다. 다산은 중국의 많은 전적을 섭렵하며 차에 대한 지식을 쌓고 특히 차를 기호식품이 아닌 약용으로 생각하고 음용하였다. 다산이 혜장과 의순 등에게 차를 가르쳐주었다고 알려졌지만, 그가 혜장을 만나 지 한 달 만에 차를 보내주기를 재촉한 걸명시는 혜장이 그와 만나기 전에 이미 차를 제조하여 전파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더 크게 한다. 다산이 차문화 부상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역할과 다산의 차 지식 습득 경로와 제다 관련 사실은 구분지어 이해해야 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다산과 승려의 교유
Ⅲ. 다산의 불교 이해
Ⅳ. 다산과 차 문화 향유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