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19th century of Joseon Dynasty was fully affected by a combination of iconographies of Buddhist paintings, diversity of painting styles, activities of monk artists, and relations by paintings (畵緣關係). In particular, an interaction between a lot of extant paintings and monk artists tended to provide lots of information to do research on Buddhist paintings 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Amitabha Buddha Preaching owned by the Jikji Museum never engaged interests of researchers to the extent that the work was left out of the research on the Buddhist painting 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The painting was introduced first on [the Korean Buddhist temple cultural asset - Gyeongsangbuk-do Province Ⅱ] published by Research Institute of Buddhist Cultural Heritage in 2008, but there was a lack of tools to offer objective information of works and visual materials. This resulted in no concern of the researchers. Furthermore, it had a significant influence on few or no research findings about the work in the sense that it was stored in a depository for too long. These was a focus on determination of when Amitabha Buddha Preaching was produced, monk artists, and enshrinement spaces. As a result, it was assumed that a monk artist, Jehan(濟閑), made that work in 1803 in order to enshrine it in a temple for Zen study owned by Jikjisa(直指寺) established in 1800. The overall composition and expressive technique of the work was very similar with painting styles of Buddhist paintings created from the late 18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the 19th century. In light of several paintings such as Amitabha Buddha Preaching in Yookhwaryo of Cheongamsa Temple in Gimcheon in 1790,
한국어
조선 19세기는 불교회화의 도상과 화풍의 다양성 그리고 화승의 활동과 화연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시대이다. 특히 풍부한 현존 작품과 수많은 화승의 교류 양상은 조선후기 불교회화 연구에 많은 정보를 제공하였다. 직지성보박물관 소장 <아미타설법도>는 조선후기 불화 연구에서 논외로 분류될 만큼 불교회화 연구자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본 작품은 2008년 불교문화재 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의 사찰문화재-경상북도Ⅱ』에서 처음 소개되었지만, 작품의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화기와 시각적인 자료가 미진하여 연구자들의 관심 밖에 머물렀다. 또한, 수장고에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는 상황도 본 작품의 전무한 연구 성과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필자는 본 논고를 통해 직지성보박물관 소장 <아미타설법도>의 제작시기, 화승, 봉안처를 밝히는데 주력하였는데, 결과적으로 본 작품은 화승 제한이 1800년에 중건된 직지사의 선당에 봉안하기 위해 1803년에 제작된 불화로 추정하였다. 본 작품의 전체적인 구도와 표현기법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제작된 불화의 화풍과 유사한데, 그 중 1790년 김천 청암사 육화료 <아미타설법도>, 1800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관음보살도>, 1803년 직지사 <괘불화>를 통해 본작품의 화승이 제한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본 작품은 제한의 화풍 뿐 만 아니라, 동시기 활동한 화승 부첨, 언보 등의 특징도 일부 보인다는 점에서 화풍을 통한 제한의 화연관계도 새롭게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제한은 19세기 전반 경상북도, 충청도, 경기도 일대에서 폭 넓게 활동한 신겸과 인적교류가 없었던 화승이다. 신겸은 당시 이 지역을 대표하는 화승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으며, 많은 화승들이 그와 화업을 지속하였다. 제한은 신겸과 동시기, 동지역의 활동 영역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그와 관련된 자료가 단 한 점도 전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계는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며, 이들은 서로 간의 교류 없이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한 화승들로 다른 화승집단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한이 그린 세 점의 선묘불화는 조선후기 선묘불화를 대표할만한 뛰어난 작품이자, ‘선묘불화 화승’이라는 타이틀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제한의 설법도 형식 선묘불화는 굵고 힘이 넘치는 윤곽선과 의습선을 중심 으로, 다양하고 독창적인 화문이 결합된 수작이다. 특히, 정사각형 화문과 모란문 등을 비롯한 여러 화문은 섬세하고 입체적인 형태로 선묘불화에 생동감을 부여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관음보살도>의 주요 존상은 일정한 굵기의 가는 선으로 명료하게 처리하였으나, 바위, 파도, 돌산 등은 거칠고 과감한 필선을 구사하여 회화성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제한은 선묘불화에서 필선의 자신감을 과감히 드러냈고, 도상에 따라 다양한 필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원숙한 화승으로 생각한다. 한 발 나아가 제한의 선묘불화 뿐만 아니라 채색불화에 대한 연구도 병행된다면, 화승으로서 수준 높은 그의 역량을 새롭게 재조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목차
Ⅱ. 화면구성과 표현기법
Ⅲ. 제작시기와 화승, 원봉안처
1. 제작시기와 화승 추정
2. 원봉안처
Ⅳ. 畵僧 濟閑의 활동과 선묘불화의 특징
1. 濟閑의 활동과 畵緣關係
2. 濟閑 선묘불화의 섬세함과 생동감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