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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식민지 여성해방운동과 동아시아 : 천도교 박호진의 사회연합운동과 생활담론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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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Liberation Movement and East Asia under Japanese Colonialism : Focused on Park, Ho-Jin(朴昊辰) of Chundogyo(天道敎) in Relation to Social Movement and Life Discourse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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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After the 3.1 movement, Chundokyo(天道敎) members moved the direction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to seven specific categories of new culture movement and social union movement. It was also a reflection of the change of Japanese domination policies and the era of the 1920s when socialism began to spread. Chundokyo(天道敎) did not rule out socialism, but rather actively introduced socialist theory and feminism. They also regarded the socialist organization as a collective force for the independence of Korea.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under Japanese rule was a combination of socialist movement and national movement. Most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under Japanese rule was a combination of socialist movement and national movement. It is not appropriate to set the angle of confusion by separating the two. This was an East Asian phenomenon not only for Joseon but also for China, Mongolia and Vietnam. The case of Park, Ho-jin proves this, and she was a nationalist and a socialist. She had pursued the unity of the nation in association with socialist organizations and embodied the national, class, and women liberation movement through the women’s labor movement. Especially, her activity was remarkable in the Women’s association of Keunwoo(槿友) and Singanhoe(新幹會). She also focused on the women’s worker movement, aiming to popularize the movement. On the other hand, women’s liberation movement of Park Ho-jin was reflected in the discourse of life at that time. She opposed the cohabitation of mother-in-law and daughter-in-law. Because Korean women could not live as human beings in the existing patterns of family life, and women themselves could not unfold their ideals and the world. Park, Ho-jin was one of representative female activist of Chundokyo who wanted to combine socialism and nationalism into one and realized the anti-imperialism and anti-feudalism.

한국어

3.1운동 이후 천도교는 독립운동의 방향을 7개 부문의 신문화운동과 사회연합운동으로 방향을 추진해 나아갔다. 이는 일제 지배정책의 변화와 사회주의가 풍미하기 시작한 1920년 대의 시대적 반영이기도 하였다. 천도교는 사회주의를 배제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회주의 이론과 여성해방론을 소개하였으며 사회주의 단체를 힘의 결집대상으로 삼았다. 일제하 대부분의 독립운동은 사회주의 운동과 민족운동이 결합된 것이었다. 이는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 몽고, 베트남 등에도 해당하는 동아시아적 현상이었다. 조선의 경우 천도교 박 호진의 사례는 이를 증명해주고 있는데, 그녀는 천도교 민족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다. 사 회주의 단체와 연합하여 민족 대단결의 연합전선을 펼치고자 했고, 여성노동운동을 통해 민 족· 계급· 여성해방운동을 구체화하였다. 특히 박호진의 활약은 여성근우회와 신간회에서 두 드러졌다고 볼 수 있는데, 그녀는 운동의 대중화를 지향하여 여성노농운동에 주력했고, 신간 회 민중대회 및 학생운동지도를 적극 펼쳐나갔다. 또한 박호진의 여성해방의 의식은 당시의 생활담론에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녀는 고부동거(姑婦同居)를 반대했다. 기존의 가정생활의 패턴으로는 여성들이 인간으로서 살 수가 없고, 여성 스스로의 이상과 세계를 펼 쳐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박호진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하나로 결합시켜 반제반봉건 의 보국안민을 실현하고자 했던 천도교의 대표적인 여성운동가라 할 수 있다.

목차

요약
Ⅰ. 서론
Ⅱ. 천도교 신문화운동과 사회연합운동의 동아시아적 차원
Ⅲ. 천도교 구파, 박호진의 여성운동
Ⅳ. 박호진과 여성생활담론
Ⅴ. 결론: 여성해방운동과 동아시아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정혜정 Hyejung Jung.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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