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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學】

일본 하기의 조선도공 사에키가에 관한 일고찰

원문정보

A Study on the Josen Potter Saeki Family in Hagi, Japan

노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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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Joseon Potter Saeki family in Hagi, Japan. They were descendants of Korean women. In other words, they were the child of Joseonʼs daughter. They learned from the head of Hagi pottery Lee, Kyeong and started pottery, and by the middle of the 17th century, they were the family members who served with Miwa Family as a supporter of the kiln. They used the name “Hanroku”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and maintained a family of pottery. But these did not last long, lasting only six generations as a ceramic family. There were too many twists and turns in the six generations. The second generation, whose father had passed at an early age, transferred his kiln to Miwa Family and the third generation was adopted into another family and changed the name from Saeki to Hayashi, and, the following fourth generation was faint in performance but reached the fifth generation, who had excellent performance. His technique was especially appreciated but he was forcibly shut down his kin because of his sonʼs fault and fleeing to another area. After that, he changed his last name to Kobayashi, changed his first name to Sahei, wandering another place, where he never ceased to burn porcelain. Then he ended at Fukakawa, and accordingly, and accordingly Saeki family, a descendant of the Joseon woman, also closed the door. And Hanroku of the Rakuzan kiln of Matsue, presumed to be his clan, succeeded only in the third generation. Thus, in the history of Japanese ceramics, the pottery family named Hanroku disappeared permanently.

한국어

본고는 일본 하기의 도공 집안 사에키 가문에 관해 고찰한 것이다. 그들은 조선 여인의 후예였다. 다시 말해 조선의 외손이었다. 그들은 하기 도예의 종가 이경으로부터 기술을 배워 도자기를 시작한 사람들이었으며, 17세기 중엽까지는 하기번의 어용가마를 보조하는 역할을 미와가와 함께 했던 가문이었다. 그들은 「한로쿠」라는 이름을 대대로 사용하며 도예집안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도예가문으로서는 6대에 그치고 말았다. 6대에 이르는 동안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다. 2대는 일찍이 부친을 여위고 나이가 어려 자신의 가마를 미와가에 양도되는 일을 겪었고, 3대는 양자로 들어가 성씨를 사에키에서 하야시로 바꾸어 심기일전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4대는 활약상이 희미하다가 5대에 이르러 활약이 두드러진다. 특히 그의 기술은 높이 평가되었으나, 아들이 과실을 범하고 타 지역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그의 가마는 강제로 폐절당하고 만다. 그 후 그는 성씨를 고바야시로, 이름을 사헤이로 바꾸고, 타지로 전전하면서 손에서 그릇 굽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후카와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그에 따라 조선여인의 후예 도예가문인 사에키가도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의 일족으로 추정되는 마쓰에(松江)의 라쿠잔 가마의 한로쿠도 3세대를 계승하고 그만 두었다. 이로써 일본 도자사에 있어서 한로쿠라는 이름을 가진 도예가문은 영구히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일본어

本稿は日本萩の陶工佐伯家に関して考察したものである。彼らは朝鮮女性の末裔であった。彼らは萩焼きの開祖で朝鮮陶工の李敬に技術を習い焼物を始めた人であり, 17世紀半ばまでは三輪家と共に萩藩の御用窯を補助する役割をした家柄であった。彼らは「半六」という名前を代々に使用した。しかし陶工という家業は長く続かなかった。6代で終わった。6代に到るまで迂餘曲折も多かった。2代は早く父親に失われ年齢が幼いということで自分の窯を三輪家に譲った。3代は養子に入り姓氏を佐伯から林に変え心機一転を試みたが, そのあとを受け継いだ4代は活躍は薄かった。5代に到りやっと高く評価され, 陶工として大活躍をしたが, 息子が過失を犯し脱藩したので, 彼の窯は強制的に癈絶されてしまう。その後, 彼は姓氏を小林に, 名前を佐平に変え, 客地に転々しながら焼物を作り, 最後は深川で迎えた。それにより朝鮮女性の末裔の佐伯家は終わったの。その一族として推定される松江の楽山焼の半六も3世代を継承でした終わった。これで日本の陶磁史における半六という名前を使う陶工は歴史の中に跡を消えたのである。

목차

<要旨>
Ⅰ. 머리말
Ⅱ. 조선의 외손 사에키가의 사람들
Ⅲ. 도공 한로쿠의 꿈과 좌절
Ⅳ. 또 하나의 한로쿠
Ⅴ. 마무리
参考文献
<要旨>

저자정보

  • 노성환 울산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 교수, 역사민속학・비교신화학 전공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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