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금오문중의 위상과 성격

원문정보

The status and character of the Geum-o Munjoong(金烏門中)

김순석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영어

In the history of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Buddhism, Geum-o Munjoong(金烏門中: large family) played an important role in several ways. First, Geum-o Munjoong revived and inherited zen lineage(禪脈) which was cut off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policy of suppressing Buddhism during the Joseon Dynasty Seonmaek was revived by Gyeong-heo. The zen lineage of Gyeong-heo was succeeded by Man-gong, and Bo-wel, the disciple of Man-gong, succeeded it. Because Bo-wel died early, he could not deliver the zen lineage to Keum-o, but Man-gong brought the zen lineage to Geum-o and continued it. Second, through the so-called "the restoration of the purity of the Buddhist world(淨化佛事)" which began in 1954 and ended in the 1970s, Geumo Munjung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the tradition of protecting the zen Buddhism and performing proper improvement thus setting an example for the Buddhist community. The Geum-o Munjung produced many attendants and devoted themselves to the projects of propagation and Buddhist popularization, thus contributing to the establishment of the original aspect of the victory. Keum-o was appointed as the head of the promotion committee of the National Convention of Unmarried Monks(比 丘僧) and led the clean-up Buddhist temple. It was a movement to restore the legitimacy of Korean Buddhism, which resisted the response of the monks who married after eating meat and destroyed the genealogy. Third, Keumomunjung devoted himself to the Buddhist popularization project. Many 1,000 students, including Geum-o's, Wolsan(月山) and Beom-il(梵日), Beom-hang(梵行), Wolnam(月南), and Tan-sung(呑星) tried to promote Buddhism according to the teachings of Keumo. Such efforts of Keumomunjung have greatly contributed to the formation of mainstream monks in modern Korean Buddhist history. In addition, it established the practice of the religious group and opened the way for Buddhism to reach out to the public.

한국어

한국 근현대 불교사에서 금오(金烏) 문중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점에서 중 요한 역할을 하였다. 첫째, 근대사회에 단절되었던 선맥(禪脈)을 부흥시키고, 그것을 계승하였다. 억불정책의 시기였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단절되었던 선맥은 한말 경허(鏡虛)에 의해서 부흥되었다. 경허의 선맥은 만공(滿空)에게 계승되었으며, 만공의 제자인 보월(寶月)이 그것을 이어받았다. 보월은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금오에게 법을 전하지 못하였지만 만공이 금오에게 법을 전해 보월의 뒤를 잇게 하였다. 둘째, 금오 문중은 1954년부터 시작되어 1970년대에 마무리되는 이른바 ‘정화불사’를 통하여 정법 수호와 수행 정진의 가풍과 기틀을 확립하여 불교 계의 모범이 되었다. 금오문중은 많은 수행자들을 배출하여 포교와 불교대중 화 사업에 진력함으로써 승가 본연의 면모를 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금오문 중의 정법 수호와 수행 정진의 가풍 확립은 1954년 소위 ‘정화불사’가 시작 되면서 본격화되었다. 금오는 전국 비구승대회 추진위원회 추진위원장에 선 임되어 정화불사를 앞장서서 지휘하였다. 정화불사는 불교의 정법을 수호하 고 계율을 지켜나가기 위해 일어난 비구승들의 계율 수호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계율을 파괴하는 대처승들의 대처식육에 저항한 한국 불교의 정통성 회복운동이었다. 셋째, 금오문중은 불교대중화 사업에 헌신적으로 노력하였다. 금오의 제자 들 가운데 월산(月山)과 범행(梵行), 월남(月南), 탄성(呑星) 등은 불교계의 거목으로 성장하였으며 1천명의 많은 제자들은 금오의 가르침에 따라 불교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금오문중의 노력은 한국 근현대불교에서 비구승들이 주류를 형성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교단의 수행풍토를 확립하고, 불교가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선맥 부흥과 계승
Ⅲ. 정법 수호와 수행정진의 가풍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김순석 Kim, Sun-seok.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 7,200원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