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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 통신사행 절목 중 구관백전(舊關白前) 예단 및 배례 강정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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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on Negotiaton of rules of Chosun Tongshinsa in 1748 - Gifts and Greeting to the old Shogun Problem -

다사카 마사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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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I scrutinized the Korean and Japanese Historical materials carefully for the situation of intense negotiations between the Officials of Chosun and the Tsushima dealing with devising the rules of Tongshinsa from April 9 to July 1, 1747. It is noted that the 'Gifts and Greeting for Shogun' written in "Jeungjiung Gyorinji", which recorded the overview, was rejected as unprecedented from the Chosen court at first, but eventually came to be implemented with 'Special King's order'. I thought that there was a complicated negotiation process on the word 'eventually', so I looked at "The annals of the Chosen Dynasty", "Tongshinsa Deungnok", "Bibyeonsa Deungnok", and Tsushima Soke Family Document "Shinshi Kiroku". According to "Tongshinsa Deungnok", the King of Chosun asserted that An inviter of Tongshinsa's sentence to Shin, Yong-rae was arbitrarily written by an inviter unlike the Japanese Shogunate or Tsushima master. So Chosun initially rejected the gift ang greeting to old Shogun. Old Shogun is not dead yet, so Tongshinsa have to meet him in Edo. So on May 12, Tongshinsa asked the king that we had to accept this sentence, and then this sentence was allowed, but they decided not to include it in the rule document. "Bibyeonsa Deungnok" on the June 5th record, old Shogun has already recorded a greeting so that Chosun allowed him to send gifts and greeting. This news was delivered to an inviter on June 24, and it was July 1 that Chosun's document was officially delivered. In two months from May to June, An inviter has continuously requested and explained at Waekwan to put the gifts and greeting to old Shogun into roll document. Between the Court of Chosun and the Japanese inviter, Korean interpreters not only conveyed the language, but also received a strong rebuttal from the Court and disputed intensely with japanese inviter on it. We saw it through Soke Family Document "Shinshi Kiroku".

한국어

1747년 4월 9일부터 7월 1일까지 벌어진 통신사 사행절목 강정을 둘러싼 조선의 왜학역관과 쓰시마의 차왜 간의 치열한 교섭 상황을 한국 및 일본 사료를 면밀히 살피며 고찰하였다. 사행절목 강정의 개관을 기록한 『증정교린지』에는 ‘구관백전(舊關白前) 예단 및 배례’ 건이 처음에는 조정으로부터 전례가 없다고 거부당했으나 ‘결국 특교로’ 시행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이라는 말에 단순하지 않은 강정 과정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을 갖게 되어 『조선왕조실록』, 『통신사등록』, 『비변사등록』, 일본의 대마도종가문서 『신사기록』을 살폈다. 『통신사등록』을 보면, 통신사청래차왜가 다례 날(4월 9일)에 차비역관 신영래에게 전달한 절목은 일본 막부나 쓰시마 도주의 뜻과 다르게 차왜가 임의로 작성한 것이라고 영조가 단언할 정도로, 처음에는 절목 속의 구관백전 예단 및 배례를 거부한다. 5월 12일에 통신사 삼사가 구관백은 죽은 것이 아니기에 에도(江戶)에서 대면할 수밖에 없어 이 절목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청을 올리자, 허용하되 절목에 넣지 않기로 한다. 『비변사등록』 6월 5일조에는, 구관백은 이미 통신의 의리가 있어 예단 및 배례를 허락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소식이 차왜에게 전달된 것이 6월 24일이며, 정식으로 비변사의 관문이 전달된 것은 7월 1일이었다. 왜관에서는 이 5~6월까지의 2개월간에도 구관백전 예단 및 배례를 절목에 넣을 것을 조선에 끊임없이 요구하고 설명했다. 동래의 역관들은 동래부사 및 접위관과 차왜 사이에서, 단순히 언어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동래부사로부터 질책을 받거나 면담도 거절당하기도 하고, 차왜에게 강한 재촉도 받아가며 또 치열한 논쟁도 벌인 모습을 『연향(延享) 신사기록 三』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며
2. 『증정교린지』가 기록한 강정의 개요
3. 구관백전(舊關白前) 예단및배례에대한조정에서의논의
4. 구관백전(舊關白前) 예단및배례성취를위한왜관의노력
5. 나가며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다사카 마사노리 Tasaka Masanori.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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