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subject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lics at the site of Hoiam Buddhist Temple and their influence on Buddhist temples in Joseon by analyzing them. The findings led to the discovery of three facts: first, the study compared and analyzed big buildings between Buddhist temples during the construction period of Hoiam Buddhist Temple and those of Zen Buddhism in Goryeo in the 12th and 13th century and found that a considerable number of buildings in Zen Buddhism temples of Goryeo appeared in the construction period of Hoiam Buddhist Temple. There were several buildings that were not found in Zen Buddhism temples of Goryeo and appeared in the construction period of Hoiam Buddhist Temple, and they included Jeongcheong, Bangjang, Jeondanrim, and Sarigak. Bangjang and Jeondanrim were built at the Hoiam Buddhist Temple under the influence of Chinese Zen Buddhism temples. Jeongcheong was originally used to meet with envoys at government office buildings of Goryeo, but it was introduced to Hoiam Buddhist Temple and used as a Buddhist temple building. Its function was for Bangjang and other Buddhist priests to worship with Sarigak. Secondly, the study divided natural stone stylobates and post-lintel stylobates into Types I and II by analyzing the relics of Hoiam Buddhist Temple and checked the order of these stylobates in construction. It also analyzed the overall flow of post-lintel stylobates in Goryeo and found that the construction of overall post-lintel stylobates comprising the Hoiam Buddhist Temple began in Hye-eum of Paju built in 1126. It was thus estimated that its construction took place in 1376 at the latest. Thirdly, the study analyzed the effects of relics at the site of Hoiam Buddhist Temple on Buddhist temples in the latter half of Joseon based on the premise that most of them kept their original forms that were shaped in 1376. One was supposed to go through many overlapping gates to enter the temple, and it seemed as the earliest stage of the entry style through various gates at Buddhist temp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Joseon. There were large Soso Four Devas images in the fourth group of gates, and they represented the earliest stage of large Four Devas images in the latter half of Joseon. The three-room gate form on the approach road to the temple was estimated to be the original form of the three-room, one-pillar gate form at Beom-eo Buddhist Temple of Busan and Tongdo Buddhist Temple of Yangsan in Gyeongsang Province in the latter half of Joseon. The Woldae of main buildings at the Hoiam Buddhist Temple had no impacts on Buddhist temp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Joseon, but it is a valuable material to be identified as an element of Joseon's royal buildings found at Daewoongjeon of Bongjeong Buddhist Temple, Hasadang of Songgwang Buddhist Temple, and Cheongpyeong Buddhist Temple of Chuncheon constructed in early Joseon.
한국어
회암사지 유구 분석을 통해 본 특징과 조선시대 사찰에 미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본고를 통해 다음 같은 3가지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첫 번째 회암 사수조기와 고려 선종계 12-13세기 사찰의 전각 비교분석을 고려선종 사원에 등장하는 건물이 회암사수조기에서 상당부분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 다. 고려의 선종사원에 없는 회암사수조기에 등장하는 전각은 정청, 방장, 전단 림, 사리각 등이나 방장, 전단림은 중국의 선종사원 영향으로 회암사에 건립되었 고, 정청은 고려의 관청건물에서 사신을 만나는 용도로 사용된 건물이지만 회암 사로 유입되어 사찰의 전각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기능으로는 사리각을 방장이나 다른 승려가 예경하는 용도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두 번째로, 회암사지 유구 분석을 통해서 자연석 기단과 가구식기단을 Ⅰ·Ⅱ형 식으로 구분하였고 이러한 기단의 건립 선후관계를 확인하였다. 또한 고려의 가구식기단의 전체적인 흐름 분석을 통해 회암사를 구성하고 있는 전체 가구식기단의 건립이 이미 1126년 창건된 파주 혜음부터 시작되었음이 밝혀졌으며, 그 건립 시기를 아무리 늦게 보더라도 1376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세 번째로 회암사지 유구가 1376년 대부분 건립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조선후기 사찰에 미친 회암사지의 영향을 분석하였다. 회암사로 진입하기 위해서 많은 중첩문루 통과하게 되는데 이는 이후 조선후기 사찰에 등장하는 다양한 문루를 통해 진입하는 형식의 가장 선행적인 단계로 추정할 수 있었다. 또한 대형 소소사천왕상이 4단지 문루에서 출현하였는데 이는 조선후기 대형 사천왕상의 가장 선행적인 단계이다. 회암사지 진입로에서 보이는 3칸 문루의 형식은 후대 조선후기 경상도 지역의 부산 범어사와 양산 통도사에서 보이는 3칸 일주문 형식의 원형으로 추정하였다. 회암사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심건물의 월대는 조선후기 사찰까지는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조선초기 건립된 봉정사 대웅전이나 송광사 하사당, 춘천 청평사에서 보이는 조선왕실 건물 요소와 동일하게 여길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목차
Ⅱ. 나옹 중창 이전의 회암사 모습과 단서
Ⅲ. 유구분석을 통해본 건립시기
Ⅳ. 조선시대 사찰에 미친 회암사지의 영향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