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iconography and painting style of
한국어
본 연구는 조선 전기 아미타팔대보살도의 현황과 제작인식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토대로 한 국 개인소장 <금선묘아미타팔대보살도>의 도상과 화풍을 중점적으로 다루는데 목적이 있다. 조선 전기 아미타팔대보살도는 고려시대에 비해 현존 작품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고려의 도상을 계승하려는 인식이 충분했으며, 16세기까지 큰 변화없이 이어져왔다. 현존하는 조선 전기 아미타팔대보살도는 총 6점이 알려져 있다. 한국 개인소장 <금선묘아미타팔대보살도>는 그 중 한 점으로 2006년 동국대학교 건학100주년 기념특별전 <국보전>을 통해 최초로 공개되어 많은 관심 을 받았다. 전시를 통해 본 불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작품의 제작시기, 작가, 소장처, 후원자 등 객관적인 정보가 누락되어 조선 전기 불화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본 불화는 고려의 전통 도상을 계승하고 16세기 왕실발원 혹은 궁정화풍 선묘불화의 특 징이 고스란히 표현된 상당히 수준이 높은 작품이다. 한국 개인소장 <금선묘아미타팔대보살도>의 세부적인 도상과 표현기법은 1532년 일본 延曆寺소장 <금선묘아미타팔대보살도>를 모본으로 제작 한 것으로 보이며, 두 작품의 도상과 화풍의 관련성은 본 불화의 위치를 추정하게 하는데 많은 도움 을 준다. 우선, 불화의 제작에 사용된 비단과 금, 금니를 표현하는 방식은 1532년 延曆寺본을 포함 하여 조선 16세기 문정왕후 발원 왕실발원 선묘불화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 중 공간을 가득 채우는 금니의 운용과 선묘의 흐름 그리고 뇌문, 마엽문, 수파문, 초문 등 다양한 형태의 무늬는 한 국 개인소장 <금선묘아미타팔대보살도>를 비롯하여 1562년 일본 圓通寺소장 <금선묘약사삼존십 이신장도>, 1565년 국립중앙박물관소장 <금선묘약사삼존도> 등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 의 유사성은 한국 개인소장본이 단순히 민간 차원에서 제작된 불화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시 사해준다. 한국 개인소장 <금선묘아미타팔대보살도>는 도상과 표현기법을 통해 16세기 중반 왕실 발원 선묘불화가 활발히 제작되고 난 이후 선묘불화가 확산되는 16세기 중반을 넘어선 시점에 제작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한국 개인소장본은 공간을 선묘가 가득 채우는 선묘불화의 전통성을 지향하고 있지만, 몇 가지 표현기법을 통해 왕실에서 직접적인 비호 아래 제작된 불화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선의 탄력성이 떨어지고 단순화된 무늬를 통한 공간의 구성력은 왕실이라는 특정 계층과 화사가 직 접 관여하여 제작했기 보다는 그 주변 환경속에서 탄생된 불화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한국 개인소장 <금선묘아미타팔대보살도>는 화면 상부와 하부가 원본의 현상에서 벗어 나 있다. 아마도 일본으로 불화가 건너간 이후 화면의 상·하부에 비단을 덧대어 붙였던 것으로 보이 며, 화면 상부에 등장하는 글 역시 어느 시점에 일본에서 추기한 것으로 보인다. 글 속에 등장하는 일본의 推古天皇(592-628) 때 활동한 승려 久能忠仁(?-?)이 활동한 지역이 현재 일본 시즈오카라 는 점은 한국 개인소장본의 일본내에 소장처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준다. 또한, 글의 내용이 ‘축원과 기원’이라는 성격이 담겨져 있는 점과 눈에 띄이는 백서로 쓰여진 점에서 한국 개인소장 <금선묘아미타팔대보살도>의 일본내에서 관심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목차
Ⅱ. 조선 전기 아미타팔대보살도의 현황과 제작 인식
Ⅲ. 한국 개인소장 <金線描阿彌陀八大菩薩圖>의 표현과 제작시기
Ⅳ. 도상의 계승
Ⅴ. 공유의 양상과 표현의 한계
Ⅵ. 補絹과 白書銘의 의미
Ⅶ.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