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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재일상공인의 모국투자와 공업단지 형성 : 구로, 마산, 구미의 사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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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land Investment by Ethnic Korean Entrepreneurs in Japan and the Formation of Industrial Complex in 1960’s Korea : Focusing on the cases of Guro, Masan and Gumi

김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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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examines core features of the ‘homeland investment’ of ethnic Korean entrepreneurs and responses of the Korean society. It is well-known that the postcolonial linkage of the Korean economy with Japanese capitalism was a major factor for the start of Korea’s export-led industrialization in the 1960s, in which process ethnic Korean entrepreneurs in Japan played a central role. This paper selects three major investment projects of ethnic Koreans in Japan in 1960s and analyses specific motivations, strategies and varied outcomes of the model cases: Fist one is Korea export industrial complex or so-called ‘Guro industrial complex’ located in Seoul-Incheon Industrial Region, and second one is Masan industrial complex located in Southeastern Maritime Industrial Region. Third one is Gumi industrial complex located in Gyeonsangbukdo province. These three different examples of the historical makings of industrial complexes can be contrasted sharply in terms of the process of the mobilization of the ‘homeland investment’ of ethnic Korean entrepreneurs and the relationships among the ethnic Korean entrepreneurs, local society and central government. Based on the comparative analysis of these three cases, this study reveals not only the motivations and strategies of homeland investment by ethnic Korean entrepreneurs but addresses the socio-cultural results and impacts of the ‘homeland investment’ of ethnic Korean entrepreneurs on Korean society of the 1960s.

한국어

재일상공인들의 모국투자가 1960∼197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당시 교포자본 의 모국투자는 ‘이윤 추구’와 ‘인정 투쟁’이라는 이중성을 띠고 있었기에 개인별· 사례별로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그 구체적 전개 양상을 1960년대 구로, 마산, 구미 지역 공업단지 개발 사례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해 살 펴보았다. 구로공단이 중앙정부 주도의 교포자본 전용 수출자유공단으로 수도권 에 조성되었음에 비해, 지방에 조성된 마산공단과 구미공단은 형성 초기 재일상 공인들과 지역사회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작용한 사례에 해당한다. 마산 과 구미 사례의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공단 개발의 전개 양상에서 양자는 상당히 대조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북한지역 출신 손달원을 핵심 당사자로 하는 마산기계공단 건설계획은 장기간의 협상 끝에 결국 계획이 좌절되고 유보되고 변 경된 데 비해, 경북지역 출신 곽태석과 이원만에 의해 주도된 구미공단 건설계획 은 이례적으로 단기간에 급속도로 추진된 것이다. 이러한 공단개발의 지역별 사례 에 대한 비교분석을 통해 우리는 ① 1960년대 재일상공인들의 모국투자와 공단개 발 참여라는 사회적 실천이 가변적인 정치적 상황과 지역적 맥락에 따라 사회적으 로 수용되거나 굴절되고 거부되었다는 점, ② 그 과정에서 재일상공인들이 중앙정 부나 지역사회와 맺는 사회관계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는데, 이는 곧잘 ‘애국’과 ‘애향’이라는 담론적 장치를 통해 표출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요약
1. 들어가며
1) 문제 제기: ‘이윤 추구’와 ‘인정 투쟁’의 이분법을 넘어서
2) 연구문제의 설정과 비교대상의 선정
2. 구로공단: 교포자본에 의해 주도된 최초의 공단건설계획
3. 마산공단: 임해기계공단 조성계획의 좌절과 굴곡
4. 구미공단: 특혜 받은 지역성과 강력한 지연 네트워크의 결합
5. 교포자본의 공단개발 참여와 ‘애국/애향’의 실천
6. 나오며
Abstract
참고문헌

저자정보

  • 김백영 Kim, Baek Yung. 광운대학교 인제니움학부대학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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