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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 조만식 선생의 생애와 통일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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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fe and the Thoughts about Unification of M. S. Cho

권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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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M. S. Cho was born in Christmas Eve of 1882, near at Pyong Yang(named ‘Jerusalem of Asia’). About here, he has lived the periods of Japanese imperialism and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r related with American missionaries and Korean Christians. Thus, all the time in his life, he has been naturally captivated by ‘Christian nationalism.’ He has resisted a Japanese imperialism on the basis of Christian humanitarianism, and like M. K. Gandhi, withstand an attack with the principles of nonviolence and disobedience. Besides, he has been called ‘Pestalozzi of Korea,’ because he respected liberty and loved peace. And he has been a genuine ‘Christian socialism,’ because he always would practice his thoughts with everyone who should co-work regardless of ideology. In the periods of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r, Cho's thoughts would be developed to a ‘nationalism for unification.’ But as the problem of trusteeship has been broken out, the majority of Christians, except Cho, standpoints a ‘Rightist nationalism.’ And the end, they escaped the North leaving Cho behind alone. Thus the Communist has been held real power of the North, standing a proletarian revolution. Beginning 1946, Cho was placed under the state of arrest and excluded after the Korean War. But his thoughts require present Government “not to give priority to a ideology over a nationality, to a religion over peace, and to freedom over love.

한국어

고당 조만식은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1882년 음력으로 12월 24일, 즉 크리스마스 이브에 동양의 예루살렘 평양 부근에서 태어나 평생을 미국 선교사 및 기독교와 관련을 맺은 상황에서 일제와 분단이라는 시대를 삶으로써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민족주의’를 형성하였다. 고당은 일제라는 암흑의 시대에 기독교적 박애정신으로 항일구국 투쟁의 기초를 삼았으며, 인 도의 간디처럼, 비폭력과 불복종으로 저항하고 항거한 국내에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민족지도자 였다. 그러면서 너무나 민주적이며 자유를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한 스승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페스탈로찌’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으며,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이념에 관계없이 좌․우익이 협 력하여 함께 사회운동을 펼쳤기 때문에 ‘기독교 사회주의자’라고도 불렸다. 이러한 고당의 사상은 해방 이후 ‘통일적 민족주의’로 발전하나, 신탁통치 문제로 인하여 고당 을 제외한 대부분의 민족진영 인사들은 반공에 입각한 ‘우파 민족주의’를 형성하면서 월남해 버 리고,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입각한 반일․반제의 ‘좌파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북쪽 지역을 장악하게 된다. 북쪽에 홀로 남은 고당은 1946년 1월부터 연금 상태에 들어가고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 정권에 의해 제거되지만, 그의 사상은 ‘뉴 라이트’ 입장을 내세우는 현 정부에게 적어도 “이념을 민족보다, 종교를 평화보다, 자유를 사랑보다 앞세우지 말 것”을 요구한다.

목차

<국문 초록>
Ⅰ. 여는 말 : 잃어버린 10년과 잊어버린 100년
Ⅱ. 고당의 생애와 시대적 상황
1. 일제 치하에서의 고당의 생애와 사회적 태도
2. 분단 상황 하에서의 고당의 생애와 정치적 태도
Ⅲ. 통일과 관련된 고당의 사상과 입장
1. 종교적 입장에서 드러난 고당의 통일사상
2. 교육적 입장에서 드러난 고당의 통일사상
3. 정치적 입장에서 드러난 고당의 통일사상
Ⅳ. 닫는 말 : 이명박 정부에 주는 시사점
참 고 문 헌
Abstract

저자정보

  • 권성아 Kwon Seong Ah. 상지대학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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