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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金煥)의 「미술론」과 식민지 조선의 ‘미학’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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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Criticism” of Kim Hwan(金煥) and the Appropriation of ‘Aesthetics’ in Colonial Korea - Focusing on the Totality Idea of Art in “Chang-jo” as Publication Media

송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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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In the modern history of art in Korea, there are some cases with ‘Literature’ and ‘the Fine Art’ corresponding with each other, sharing the same artistic philosophy and seeking mutual artistic practice. Among them, maybe the literary magazine, “Chang-Jo”, which start with the modern literature, comes first to everyone's mind. Of course, this period seems particularly true in the meaning that it was a time that modern literature and modern fine art defined its own artistic area. But in the magazine, “Chang-jo”, each areas of literature and fine art have formed the sharing point under the same aesthetic base influencing each other. On the other hand, Kim Whan is significant with being a hands-on staff of “Chang-jo” and writing “Artistic Criticism” etc. So far, though, Kim Whan has been underrated than Kim, Kwanho and Kim, Chanyoung, there is obviously a point of re-evaluation in the way that he plays an important role in constituting a total art idea in the early days of “Chang-jo”. In this paper, I have purpose with review on the artistic criticism of Kim Whan's as the first specific challange to unravel the total art idea that “chang-jo” constituted as a professional modern literary magazine. Above all, in this paper, I found that Kim Whan has studied in Japan Art School that founded by Kino Toshio who majored and taught mainly Aesthetics and History of Art as a professor of Waseda University. Through this fact, I also found that his artistic criticism has been made under the influence of the books about Aesthetics written by Shimamura Hoketsu and Matsumoto Kojiro, etc. Kim Whan emphasized the beauty of the ‘nature’ and the ‘nature’ from ‘Mysterious Screen’ first published in “Chang-jo” to the writing on artistic criticism. So to speak, he misunderstood the concept of beauty intentionally from the natural beauty and artificial beauty of Western aesthetics established under the influence of I. Kant. Such a conceptual entangling of his was important and problematic enough to provoke a debate between Kim Dongin and Yum Sangseop then. His own artistic criticism was forced to lose its installation position as more sophisticated theory appeared by Kim Chanyoung. Nevertheless, his criticism had plenty of meaning just being the only first one submitted in the form of the early 'theory' on modern art.

한국어

한국의 근대 예술사에 있어서 ‘문학’과 ‘미술’이 서로 조응하면서 동일한 예술적 이념을 공유하며 상호적인 예술적 실천을 꾀했던 몇 가지 시대상의 계기들 중에서 한국에서 근대 문예가 최초로 시작되었던 문예지인 『창조』의 사례를 가장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이는 이 시기가 근대 문학과 근대 미술이 각각 스스로 자기 예술 영역 을 규정해나갔던 시기였다는 의미에서도 그러하지만, 잡지 『창조』 속에서 문학과 미술 영역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동일한 미학적 기반 아래 공유지점을 형성해 나갔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어렵다. 비록 지금까지 그 중요성이 간과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처럼 문학과 미술이라는 각각의 근대적 예술 영역이 서로 공통된 미학적 기반을 발견해나가는 데 있어서 『창조』의 핵심적 실무자이자 미술론 을 썼던 김환이라는 존재는 여러 모로 중요한 위 치를 차지하고 있다. 비록 지금까지 김관호나 김찬영에 비해 박한 평가를 받고 있었 으나 김환은 『창조』의 초창기에 종합예술적 이념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는 점에서 재평가의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본 논문은 바로 최초의 전문적인 근대 문예잡지로서 『창조』가 구성했던 종합예술적 이념을 해명하고자 하는 첫 번째 구체 적인 과제로 바로 이 김환의 미술론을 재론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이를 위하여, 본 논문에서는 우선 김환이 와세다 대학의 교수로서 주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가르쳤던 키노 토시오가 세운 일본미술대학에서 수학했던 바 있 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의 미술론이 시마무라 호케츠나 마츠모토 코지로 등이 저술한 미학 관련 서적들의 영향 하에서 구축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말하자면, 김환이 『창조』에 발표한 소설 신비의 막 에서부터 강조했던 ‘자연’과 ‘자연’의 미란 칸트의 영향하에 성립된 서구 미학의 자연미와 인공미라는 구분으로부터 다소간 의 도적으로 오해된 것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김환의 개념적 착종은 이후 김동인과 염상 섭 사이의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문제적인 것이었지만, 이후 김찬영 등에 의해 보다 정교한 미술론이 등장하면서 그 설 자리를 잃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환의 미술론은 근대 미술의 초창기 ‘론’의 형식으로 제출된 최초의 것이 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으며, 『창조』의 미학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목차

<국문요약>
Ⅰ. 근대적인 ‘미술론’의 의미라는 물음
Ⅱ. 김환(金煥)의 일본 유학 생활과 학적인 배경
Ⅲ. 예술미와 자연미의 구분을 통한 ‘미학’의 존립 근거의발견
Ⅳ. 결론
<참고문헌>

저자정보

  • 송민호 Song Minho. 홍익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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