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漢陽映畵社の映画制作の方法と会社の運営方式に研究
초록
한국어
이 논문은 1934년에 설립되어 1937년에 일차 해산된 조선의 영화제작사(映畵製作 社) ‘한양영화사’의 ‘영화 제작 방식’과 ‘회사 운영 방법’에 대해 논구이다. 나운규는 야심찬 재기작 「아리랑 제 3편」을 한양영화사에서 제작하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실패한 발성영화로 한국영화사에 기록되었고, 이로 인해 나운규의 꿈과 재기는 무산 되고 말았다. 기존의 한국 영화사(映畵史)는 이러한 숨겨진 사실(史實)에 무심했고, 한양영화사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양영화사’라는 문제 적 영화제작사를 면밀하게 검토하면, 1935년 발성영화에 대한 도전에 관련된 조선 영화계의 상황을 밝혀낼 수 있으며, 1930년대 변모하는 조선의 영화 현실을 살필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일본어
この論文は1934年に設立され、1937年に一次解散された朝鮮の映畵製作社 ‘漢陽映畵社’の‘映画制作の方法’と‘会社の運営方式’についてノングである。羅 雲奎は野心的な回復作「アリラン第三篇」を‘漢陽映畵社’で製作した。しかし、 この作品は失敗した‘トーキー’で、‘韓國映畵史’に記録された。これにより、 ‘羅雲奎’の夢と回復は失敗に終わった。既存の‘韓國映畵史’は、これらの隠され た‘史實’に無関心し、‘漢陽映畵社’の失敗の原因をあえて分析しようとしなかっ た。しかし、‘漢陽映畵社’という問題と‘映畵製作社’を綿密に検討すると、1935 年の‘トーキー’への挑戦に関連する‘朝鮮映畵界’の状況を明らかにすることがで き、1930年代変化する‘朝鮮映畵の状況’を察することができる根拠を見つける ことができます。羅雲奎が漢陽映畵社を設立して活動していた時期は、トー キーが登場した時点であった 。問題は、従来の映画制作会社運営方法には、既 に変わった映画制作環境を余裕がなかったという点である。羅雲奎が「アリラン 第3編」を制作しようと試みていた方式は、従来の小規模独立プロダクションで も可能だったようだった。しかし、すでに朝鮮の映画環境は、映画会社の誕生 にふさわしい経営方式を要求していた。これらの趣旨からすれば、漢陽映画社 廃業は当然の帰結といえるだろう。
목차
Ⅰ. 문제제기와 연구사 검토
Ⅱ. 한양영화사의 창립과 제작 환경
Ⅲ. ‘나운규’ 중심의 전기(前期) 한양영화사
1. 창립작 「강 건너 마을」과 배우 ‘차상은’의 기용
2. 「아리랑 제 3편」과 발성영화에의 도전
3. 1937년 합작 영화 「인생항로」와 나운규의 일선 후퇴
4. 「도회의 뒷골목」 제작 중단으로 본 내부 사정
Ⅳ. 동인제 시스템의 배역과 캐스팅 조건
1. 「강 건너 마을」의 캐스팅과 자원공간의 혁신
2. 「춘향전」과 「아리랑 제 3편」 캐스팅 비교
3. 조역의 무분별한 배역 할당과 경험 부족
5. ‘나운규 중심’ 운영의 구조적 관성
Ⅴ. 한양영화사의 제작 운영 방식과 동인제 영화사 시스템의 한계
<참고문헌>
<일문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