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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사서에 기록된 신라의 시조와 건국에 대한 고찰

원문정보

A Study on the Progenitor and Establishment of Shilla in Korean and Chinese Librarians

박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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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In order to understand the history of a country properly,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the progenitor of the country and its founding process. What I want to pay attention to in this article is the record of the Chinese librarian. There are different contents in the Chinese librarian and the Korean librarian on the progenitor and founding of Silla. Typically, Chinese records do not record the progenitor of Silla. On the other hand, Koguryeo and Baekje have their progenitor clearly recorded. It is also recorded in "Suishu" that the migrants of Goguryeo founded Silla. The folktale narrative recorded in "Samguksagi" and "Samgukyusa" is not a recognition of Silla's contemporaries, but a recognition made in the Goryeo period. The progenitor of the Shilla Dynasty were the King SeongHan. However, in the process of unifying the progenitor in the Goryeo period, the perception of the king was lost. On the other hand, the record of Silla's founding in "Suishu" is described in much more detail than the librarians in Korea. However, this has been neglected since it does not coincide with the librarian of Korea. However, the records of the founders of Silla in Chinese librarians are a guarantee of historical facts.

한국어

한 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시조와 건국과정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신라의 시조와 건국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의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 수록되어 있으며 중국의 『梁書』, 『隋書』, 『北史』, 『通典』, 『唐書』등에 수록되어 있다. 한편 이러한 사서와 더불어 당대의 금석문인 「황초령비」, 「문무왕릉비문」, 「김인문묘비문」, 「흥덕왕릉비편」, 「대당고김씨부인묘지명」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본고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사서의 기록이다. 신라의 시조와 건국에 대해서 중국의 사서와 한국의 사서에는 서로 다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사료에는 신라의 시조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반면 고구려나 백제는 그 시조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수서』에는 고구려의 留民이 신라를 건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시조설화는 신라의 당대의 시조인식이 아니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시조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신라 시조로 기록되어 있는 혁거세 설화는 조선의 후예인 신라를 강조하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를 통해 고려는 부여계통의 고구려와 백제를 비롯하여 조선까지 아우르면서 진정한 동조의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신라 당대의 시조는 태조 성한왕이었다. 성한왕은 김씨의 시조 알지였다. 하지만 성한왕에 대한 시조인식은 고려시기에 들어 신라의 시조를 일원화 하는 과정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수서』에 나타나는 신라 건국에 대한 기록은 한국의 사서들보다 훨씬 자세하게 서술 되어있다. 다만 이것이 한국의 사서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무시되어왔다. 그러나 중국사서의 신라 건국 기록은 역사적 사실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관구검의 침략으로 죽령까지 피난한 고구려 유민들과 충주지역을 기반으로 한 김씨 세력이 결합하였고 이들이 신라 내부로 들어가 김 씨 왕족이 되었다. 이는 충주에 남아있는 고구려 고분군과 신라의 묘제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따라서 『수서』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신라의 건국으로 인식하고 기록한 것이다. 반면 고려는 신라의 삼성교립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추왕의 즉위에 대해 새로운 왕국이 건국되었다고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정보와 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하겠다.

목차

국문초록
Ⅰ.머리말
Ⅱ.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시조 인식과 신라 당대 인식
Ⅲ. 중국사서의 신라 건국 기록과 그 인식
Ⅳ. 맺음말
참고문헌

저자정보

  • 박경택 Park, Kyoung-taek. (재)시공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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